"왜 연애 안 해요?", "왜 결혼 못 했어요?" 요 몇 주간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어이없고 무례한 질문이었다. "왜 그렇게 생기셨어요?"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랄까... 한 방 먹이는 시원한 반문을 하고 싶었으나 의외로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팠어요"였다. 물론 올 초에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았지만, 죽을병도 아니었고 수술하면 나을 수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난 최근 몇 년간 진짜 아팠다. 몸도 마음도 오랜 시간 앓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유달리 지랄 같던 상사의 탓도 아니고 그저 내가 사회를 견디기에는 너무 어리고 유약한 탓이었던 것 같다. 몇 년간 나는 수시로 상담받으면서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처음에는 수면제만 처방받으러 갔다가 나중에는 항우울제까지 꽤 오랜 시간 먹어야만 했다. 그냥 좀 못 자던 사람이었던 나는 명확한 이유도 없이 정신질환자가 되어있었다.
무기력했다. 퇴근한 뒤 집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퇴근과 동시에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집은 더 더러워져만 갔고 집에서도 신발을 신고 지냈다. 쓰레기 같은 집에서 살던, 해 뜨는 걸 보고도 잠들지 못했던 시간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처방받은 약과 술뿐이었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마시다 기절하듯 잠이 들면 그래도 그다음 날은 버틸만했다. 계속해서 얼굴과 몸이 붓고 살이 쪄서 맞는 옷이 없어져도 나는 미련하게 그 짓을 계속했다. 배가 찢어질 듯이 불러도 자꾸만 허기가 졌다.
그래서 그 무기력했던 시절 일을 안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바깥에서 볼 때는 문제가 없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어진 일은 그런대로 했고, 종종 친구들도 만났다. 그렇게 매일이 위태롭던 중 몸에서도 신호가 왔다. 온갖 호르몬이 제멋대로 날뛰어 매주 조직 검사를 했고 호르몬도 맞으러 다니며 수술 날짜도 잡았다.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마음을 위해 의지했던 수면제 항우울제와 드디어 이별할 수 있었다.
그맘때 부모님은 고향 한적한 동네에 집을 짓고 계셨다. 곪아가는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같이 살 것을 제안하셨다. 조금 고민했지만 언젠가부터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내 삶에 변화를 줄 때라 생각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삼십 대 중반 나는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에피소드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 아이는 동물 병원에서 새끼 시바견을 입양한다. 모모코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을 다해 보살핀다. 그러나 자랄수록 허리는 길어졌고, 그에 반해 다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우스꽝스럽게 자라난 강아지의 아빠는 닥스훈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 사랑으로 보살폈기 때문에 짧은 다리까지도 밉지 않고 오히려 예쁘게 바라본다.
그리고 작가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때로는 미의식조차 바꿔 버리는 불공평한 편애이다." (*요코 씨의 말)
부모님 댁에서 살게 된 지 이제 4개월, 나는 더 이상은 졸피뎀을 먹지도 이유 없이 울지도 않는다. 이런 내가 누군가에게는 허리는 길고 다리는 짧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 몰라도 나는 서로를 향한 무조건 적인 편애를 믿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