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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공주 Aug 28. 2022

중국집 옆 카센터에서 찾은 낭만

얼마 전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던 날, 10년 운전경력 중 처음으로 사고를 냈다. 핸드폰을 보고 있다거나 딴짓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내 앞에 잘 정차해있던 티볼리를 박았다. 보험회사에서는 거주지 근처 어디 어디를 소개해줬지만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친 건 삼성 대반점 세차장이었다. 경미한 사고라 필요한 건 범퍼 교체 정도였지만..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그곳이었다.​


꼴에 외제차라고 부품 수급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휴직을 앞두고 매주 mri, 초음파를 보러 다니는 나에게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래도 딱 필요하던 시기에 새 차처럼 수리되어 나에게 다시 왔다. 수리가 다 됐다는 전화를 받고, 사장님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급한 마음에 자차 수리비도 결제하지 않고 차를 찾아왔다. 생각 없는 나를 자책하며 전화로 '조만간 들러 결제하겠다' 말씀드렸더니 괜찮다며 편할 때 아무 때나 오면 된다셨다. ​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를 피하기 위해 일곱 시가 다 되어 세차장을 찾았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이라지만 나름 고요한 금요일 저녁의 회사. 그 근처도 예외는 아니다. 불 켜져 있는 삼성 대반점도 텅 비었지만 세차장 아저씨는 역시나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늦어서 죄송하다 현금이 없어 카드 하려 한다 같은 얘기로 정적을 메꾸며 카드를 건네다 익숙한 걸 발견했다.​


내 이름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이름이 붙어있는 스타벅스 컵이었다. 사이렌 오더로 마신 아이스 라테 그러고 나서 차에 아무렇게나 뒀던 일회용 컵. 며칠을 방치하다 손 세차를 맡겼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났다. 그렇게 버린 컵에는 국화꽃이 담겨있었다. 담아둔지 좀 됐는지 꽃은 조금 시들었지만 물은 금세 간 것처럼 맑았고, 컵 아래에는 책상이 젖을까 휴지도 곱게 올려져 있었다.

어!? 이거 제가 차에 뒀던 컵인데 우와! 여기 제 이름 있어요! 너무 이뻐요 사진 찍어도 돼요? 반가움에 와다다 말을 쏟아내는 나에게 아저씨는 마침 국화꽃이 좀 있어 이렇게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쑥스러우신 것 같았다. 냄새가 좋아서.. 아저씨가 말을 보탰다.


쓸모없어 버려졌던 컵에 꽃을 꽂고, 보고, 향기를 맡는 것과 같은 것들이 아저씨를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버틸 수 있게 한 힘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재미없고 멋도 없는 삶의 터전에 생기를 줬던 건 이렇게 작고 하찮은 것들이었다. 국물이 먹고 싶던 날 때마침 점심메뉴로 나온 칼국수, 오랜만에 연락 닿은 친구의 좋은 소식, 회사 메신저에서 찾아낸 웃긴 이모티콘 같은 것들.. 나는 또 어떤 하찮고 작은 낭만으로 며칠을 살아낼까 오늘도 나는 내 삶에 작은 꽃을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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