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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긍정 Nov 21. 2023

꿀 같은 휴가

연차


 나를 위해 쓰는 첫 휴가.



 주말 이틀 다 약속이 잡혀있었다. 토, 일 모두 아들의 친구와 밖으로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엔 분명히 녹초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다른 약속이 있어서도 아니고,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도 아닌 오롯이 내 몸을 쉬게 하기 위한 휴가를 썼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연차를 본인을 위해서 쓰지 그럼 누구를 위해서 쓴단 말이냐. 하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면 이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연차는 곧 아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두 달이나 되는 겨울 방학을 위해 열심히 연차를 아껴두고 있다. 놀러도 가야 하고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연차를 써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확히 입사한 지 16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아들을 위해서도 남편을 위해서도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쓴 휴가. 나에게 오늘 이 휴가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모른다.

 오늘 날씨는 또 강풍주의보에 비가 쏟아졌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이상한 날씨였다. 이런 날 회사까지 쉬어 주니 더욱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계획형인 나는 오늘 하루를 아주 알차게 보내기 위한 계획을 이미 전 날에 다 세워놨다. 포스트잇에 잘 적어 화장대 거울에 붙여뒀다.



1. 영화 보기

 비밀의 언덕이라는 독립 영화인데 꼭 혼자 집에 있을 때 집중해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고, 영화 또한 내 심금을 울렸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122분이었다.


2. 글쓰기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출퇴근 버스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써 내려가다, 아들을 재우고 난 뒤에 퇴고를 거쳐 발행한다. 주로 이런 패턴인데 오늘은 혼자만의 휴가이니만큼 조금 여유롭게 글을 쓰고 싶었다.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 한잔을 내려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휴대폰이 아닌 노트북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 소리를 ASMR 삼아 비 오는 창 밖을 내다보며 감성에 흠뻑 젖어 글을 썼다. 그런데 웃긴 게 이런 감성 덕분에 글이 더 잘 써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분위기에 빠져 멍 때리게 되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글을 많이 쓰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오늘 이 좋았던 감성만 기억해 두자.' 하고는 글쓰기를 마쳤다.


3. 책 읽기.

 현재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이라는 일본 소설을 읽고 있다. 친구에게 추천받아 바로 책을 구입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남은 뒷부분을 모두 읽고 싶었다. 워낙 술술 읽혀서 금세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4. 집안일

 늘 쫓기듯 급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빨리 개서 넣어 놓기 급급했는데,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느긋하게 집안일을 했더니 하마터면 집안일이 좋아질 뻔했다.


5. 학원 라이딩

 일하기 전에는 늘 함께 다녀주던 길. 항상 할머니 손잡고 택시를 타거나 버스 타며 다니게 되었지만 오늘만큼은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편안하게 엄마 차를 타고 함께 가니 행복하다는 우리 아들. 엄마가 더더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까?






여유로운 하루, 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하루.


이런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렇게 오늘의 기억을 가지고 당분간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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