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3)

그해 설날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3)_그해 설날

안녕하세요.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입니다.

중국도 설 명절이 있어서 저는 긴 연휴를 보내는 중입니다.

중국에서는 춘절이라고 부르는데,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휴일이에요. 저는 3일까지만 쉬고, 4일부터 도서관 개관하려고 합니다.

명절이지만 그 어떤 명절보다 묘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로지 혼자 보내고 있거든요. 동반 비자가 안 나와서 가족들이 한국에 있는 바람에 추석에 이어 설도 혼자 보내게 되었네요. 저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있습니다. 어제 체크인해서 내일 체크아웃할 예정이에요. 2박 3일 푹 쉬며 몸도 마음도 재충전하러 왔습니다.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제 칭다오에 계시는 많은 경계인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셔서 어딜 가나 교민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먼저 알아보시고 인사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1년 전, 아니 작년 7월 도서관 이전 전만 해도 저희 도서관의 존재는 알고 있어도 이용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시즌 2에서는 하루에 30명 오시면 정말 많이 오신 거였지만, 지금은 아무리 적게 오셔도 30명 이상은 오십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서관은 올해 4월 4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글학교는 3월이 되면 인가받은 지 만 5년이 되는 것이고요. 저와 아내에게는 무척이나 버거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힘을 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시즌1 책은 소유하면 짐이 되고, 나누면 사랑이 된다.
시즌2 장소 계약 전(통창 뷰에 반했습니다) 상가에서 가정집으로 이전

한글학교는 "엄마, 나 한국 사람이야? 중국 사람이야?"라고 묻는 어린이를 본 순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설립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장모님께서 다른 지역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바로 출장 일정을 잡고 조언을 구해 결심한 지 2개월 만에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은 한글학교가 1년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들이 책 가져오는 게 힘들다고 말씀하셔서 "그럼 저희가 도서관 하나 만들죠."라고 용감무쌍하게 대답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차가 없던 시절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책을 모으러 다니기도 했고, 다른 도서관이 문을 닫으며 보낸 책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책 1000권을 기증한 분도 있으셨고요. 배송료 때문에 500권만 가지고 들어왔지만, 덕분에 어린이 도서관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달에는 4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점점 이용하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좋아해 줬습니다. 시즌 1은 "(해외에서) 책은 소유하면 짐이 되고, 나누면 사랑이 된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책을 모으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슬로건 덕분에 많은 분들이 책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도서관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반 도서관으로 교민들에게 완전히 개방할 수 있었고, 그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무료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숟가락 하나까지 팔고 가던 교민들이 이제는 책을 기꺼이 기증해 줍니다. 얼마나 힘들게 가져온 책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 중입니다. 언제나 교민들이 주신 지지와 첫사랑을 기억하며, 자주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애씁니다.

올해 명절은 참 묘하게 보내고 있지만, 이 쓸쓸함에 추위 속에 따스한 햇살처럼 다정함 한 스푼이 더해지니 '평안'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네요. 박준 시인의 신간 산문집을 읽고 나니 '그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그해 설날

한국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칭다오는 다정한 햇살이 내렸어

준서는 건강하게 자라줬고
많은 식구들에게 웃음을 줬고
나에겐 힘을 줬어

내년 설엔 올해 설을 이렇게 추억할 거야
날씨와 감정이 잘 맞았었다고
추워도 다정한 햇살 덕분에 괜찮았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고
조금 나른했고
감히 평안했고
다정하게 쓸쓸했다고
그래서 좋았다고


그곳에는 설날이 있나요? 오늘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이방인들을 많이 봐서 좋았습니다. 언제나 쓸쓸함은 또 다른 쓸쓸함을 보며 위로받으니까요.

스타벅스 리저브 2층에는 두 시간 동안 혼자 책 읽는 사람만 있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어디에 계시든 부디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꺼내 보겠습니다.

-임인년 다시 새해, 첫날,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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