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의 시대
안녕하세요.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입니다.
평안하셨나요?
거주하시는 곳의 코로나 정책에 따라 일상을 즐기고 있거나 통제당하고 있겠지요.
같은 바이러스를 두고 한쪽은 자유, 한쪽은 봉쇄를 하니 사람의 다양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앞에 있는 편지를 보지 못 하셨다면 지금의 제 상황을 모르겠네요. 저는 1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중입니다. 동반비자가 아직 안 나와서 홀로 칭다오에서 지내는 중이고, 내일 500일이 되는 아들과 아내는 본가(시댁)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1년이 되는 3월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의 최대치를 1년으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코로나와 봉쇄로 인해 사회와 조금 떨어져 있었던 게 나에게 다행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곳은 8일 동안 봉쇄되었었고, 지난주 월요일에 해제되어 조심스럽게 일상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요즘 감정의 기복은 거의 너클볼 수준입니다. 마구와도 같은 이 감정 기복은 기분이 서서히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제일 좋은 기분에서 제일 안 좋은 기분으로 뚝 떨어집니다. 이런 마구와도 같은 감정 기복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작은 일에 화가 납니다. 화의 감정은 대부분 하루 안에 정리되고 후회합니다. 격리, 단절, 봉쇄 등이 반복되면서 이런 울의 감정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안부만 물어봐도 고맙습니다. 어둠으로 사라져 버릴 거 같아도 금방 회복됩니다. 상흔은 남지만. '오늘의 테이블'이라는 큐레이션을 소개하며 하루를 '잘 살겠노라' 다짐하고, '오늘의 문장'을 올리며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가감 노트를 적는 중입니다. 감사한 일도 적고, 화나는 일도 적는 중입니다. 적으면서 기억하고, 적으면서 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한 일은 10 가산, 화나는 일은 1 감점이니.
예전부터 하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항상 즐거우면 조증이고, 항상 우울하면 우울증이야."
지난 3월을 돌아보니 조와 울 사이를 많이도 오갔습니다. 히말라야 정복하려고 동네 뒷산 죽어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처럼 지낸 거 같습니다. 쓸데없는 글을 많이도 뱉어 냈고, 후회되는 글도 몇 개 있습니다. 남에게 해가 되는 글은 내리고, 나에게 후회가 남는 글은 남겼습니다. 울에서 조로 돌아왔지만, 일종의 상흔을 남기며 똑같은 상흔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내버려 둡니다.
오른쪽 팔꿈치 쪽에 수술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예전에는 신경 쓰여서 박스티나 팔꿈치를 가리는 티를 입고 다녔는데, 신경 안 쓴 지 좀 됐습니다. 다만 집에서, 목욕탕에서 흉터를 보며 '조심해야지'라고 속삭이곤 합니다.
조가 너무 강하면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고, 울이 너무 강하면 책임지지 못할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너무 들뜨지 않도록 조의 기운을 울로 누르고, 너무 우울하지 않도록 울의 기운을 조로 누르며 그렇게 '균형'이라는 걸 잡아가는 중입니다.
코로나19라는 작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고 난 뒤 우리는 어쩌면 '조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변수 속에 나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이 시기를 이겨내길 바랍니다. 요즘 들어 요조 작가님의 '늘 무사하세요'라는 인사를 진심을 다해 건넵니다.
봉쇄 기간에 '뿌리 깊은 나무' 정주행 했는데 "선한 사람은 한 번도 악해질 만한 일을 만난 적이 없었던 거야"라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이미 자신의 악한 얼굴과 마주한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뻔뻔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는 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에 대사는 반만 맞는 말입니다. 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기어이 선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실패했을 뿐(그렇다고 무슨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니 안심하시라),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도서관 이전 후 이방원 같은 모습이 조금씩 나올 뻔한 적은 있지만, 아직 나온 적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어디에 계시든 조와 울 사이에서 끝내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늘 무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