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절과 균형 잡는 삶
지난 3월부터, 사실 지난해 3월부터 젠가 게임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갑작스럽게 한국에 갇히게 되었을 때, 젠가 가장 아래에 있는 블록 하나가 빠졌다. 위태로운 삶이 반복될 때마다 위에 있는 가장 안전한 블록부터 빼면서 균형을 잡아갔다. 육체적인 대미지가 가장 컸던 것은 아마도 요로결석으로 인해 급성신부전증 오고(2cm짜리 결석이 요로를 막고 있었음) 6주 동안 세 번의 수술을 했을 때였을 거다. 의사는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했지만, 두 번째 수술을 하고 퇴원했을 때 준서가 태어났다. 세 번째 수술을 하고, 조리원에서 나왔다. 이어지는 육아로 잠은 당연히 부족했고, 칭다오로 돌아오는 길이 한 번 꺾였을 땐, 정신적인 대미지도 컸다.
우여곡절 끝에 칭다오에 돌아왔지만, 동반비자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약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밑에 있던 젠가 블록 하나가 더 빠져서 가운데 블록으로 간신히 버티게 되었다. 도서관을 개관하고 이전 문제가 꼬이면서 균형을 잡아주던 젠가 블록들이 꽤 많이 빠져나갔고, 그래도 운영위원들의 헌신으로 이전 문제가 수습되고, 이제는 조금 안정을 취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늘어난 이용자로 인해 과부하가 되었고,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한숨 돌렸지만, 뜻하지 않게 반납 과의 전쟁과 청소년 문학의 밤이라는 큰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나니 번아웃이 와서 젠가 가장 아래에 있던 블록이 빠지기 전에 휴가 등을 통해 수습했다. 올바른 도서관 이용을 위한 캠페인으로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는데, 작은 돌 알맹이 하나가 남아 있었다.
준서와 돌 전에는 무조건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돌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매일 아빠 없는 돌 사진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 혼자 모든 걸 준비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오늘은 그런 그리움들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심한 바람이 불고 있는데, 오랜 시간 반납을 안 하고, 연락을 안 받던 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젠가가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고, 끝내 전화 문자를 안 받은 또 다른 청소년이 기어이 마지막으로 남았던 제일 밑에 있는 젠가 블록 하나를 뽑고 말았다.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가 기를 쓰고 균형을 잡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역순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를 쓰고 왔던 과정을 넘어 준서와 아내를 두고 온 것까지, 화가 절정에 이르렀고, 마음속에서는 “네가 잘 못된 선택을 한 거야. 한국에 남아 있었어야지.”라는 속삭임과 함께 자책의 늪에 발을 들려 놓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내가 교민들에게 보낸 문장이 생각났다.
‘도서관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1월에는 11월 책 친구 책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되는 책에 있는 문장을 보내드려고 합니다.
오늘의 문장은 문학동네와 난다에서 수많은 책을 편집하고, 지금도 여전히 프리랜서로 좋은 책을 편집하고 있는 김필균 편집자의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제철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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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고 달라지지 않잖아요. 쓴다고 해서 내 주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현실이 바뀌는 것은 전혀 아닌데, 그래도 쓰면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바뀌는 것 가아요. 왜 여전히 쓰고 있느냐 생각하면, 외부를 바꾸지 못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시각이 바뀌기 때문인 거죠.
ㅡ「시인의 마음-박준 시인」 중에서
제가 책을 많이 읽는 이유와 부지런히 쓰는 이유는 지식의 갈급함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박준 시인의 답과 비슷합니다. 내가 쓰는 글이 세상을 바꿀 거란 막연한 기대보다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게 좋아서 글을 읽고 씁니다. 박준 시인의 답과 같은 게 아니라 비슷하다고 한 이유는 저는 관점이 바뀌는 것도 좋지만, 시야가 넓어지는 것, 즉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게 좋습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반대해도 '그 사람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거죠. 비난이라는 화살의 촉은 상대방이 아닌 나를 향할 때가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당연히 무분별한 자책에 당하지 않으려면 든든한 방패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겠죠.
도서관에 방문해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교민들의 마음도 궁금합니다. 도서관에 방문할 때마다 시야가 조금씩 더 넓어지기를,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방패가 더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주말에 비가 오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불금보다 적당히 따듯한 온금 보내세요~’
‘당연히 무분별한 자책에 당하지 않으려면 든든한 방패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겠죠.’
이 문장이 생각나서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와 써야 할 원고를 마무리하고, 글로 모든 걸 풀어내고 있다. 글로 모든 감정을 푼다. 그리고 아무리 지독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글과 함께 흘려보낸다. 젠가 가장 아래 블록은 빠졌지만, 균형을 잘 잡았고, 무너지지 않고 고스란히 한 칸 아래로 주저앉았다. 다시 젠가 게임을 시작한다. 나에게 방패 중 하나는 ‘글’이다. 내일은 내일 해가 뜨겠지. 밤은 깊고, 신은 우리에게 잠과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지. 이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