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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Sep 17. 2020

(미국)어서 와, 미국 시골은 처음이지?

미네소타, 일리 





 미네소타에서 차로 반나절을 달려 Ely(일리)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도시로 웬만한 한국의 시골과 비슷하다. 하나같이 낮은 건물, 듬성듬성 있는 집들 거리엔 몇 없는 사람들이 미네소타보다 훨씬 더 작은 도시에 와있는 것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보다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리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Will Steger Center”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Will Steger라는 모험가가 설립하고 있는 센터로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나무를 베고, 다듬고 집과 센터를 짓는 것 모두. 아직 한창 설립 중인 데다가 며칠 전 큰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고 해서 나와 혜리, 청빈이는 이 곳에 2주 동안 봉사활동으로 하기로 했다. 센터라고 해서 큰 건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적어도 센터로 가는 포장도로는 마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미국 시골을 너무 만만하게 본 모양이다. 



 포장된 한산한 도로를 벗어나서, 며칠 전 있었던 큰 태풍으로 진흙탕이 되어버린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렸다. 모든 비포장도로가 그렇듯, 중간중간 돌멩이며 나뭇가지 때문에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스쳐가듯 지나가는 길에 어떤 나무는 뿌리를 훤히 드러낸 채로 누워있었고, 어떤 나무는 너무 단단한 고집을 차마 꺾지 못하고 몸통이 뚝 부러진 채로 겨우 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람과의 치열했던 싸움의 현장처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멀미가 심해질 때 즈음, 겨우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를 가장 위로하고 마을같이 형성된 이곳에는 게스트를 위한 몇 개의 오두막, 부엌과 창고가 있는 메인 오두막과 작업실 그리고 Will씨를 도와 같이 거주하고 있는 크루들의 텐트가 보였다. 


“안녕! 모두 반가워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짧은 갈색머리가 보기 좋게 흩어진 채, 환한 미소로 제나가 우리를 반겼다. 제나는 센터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는 크루로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서 꽤 오래 산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작업용 멜빵바지에 한 번도 먼지를 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워커, 무엇보다 그녀가 입고 있는 민소매 사이로 제모를 오래 하지 않은 것 같은 겨드랑이가 잠깐씩 보였다. 하긴, 이곳은 털이 수북한 쪽이 더 어울린다. 부엌이 딸린 가장 큰 ‘거실’ 역할을 하는 메인 오두막 건너편에 화장실 두 개가 있는데 정말 배설만 겨우 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배설물이 그대로 쌓인 옛날식 화장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없다. 호숫가에 사우나가 하나 있긴 하지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고 말 그대로 사우나만을 위한 공간인 데다가 일주일에 한 번밖에는 불을 지피지 않는단다. 아마 혹한의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을 위한 Will씨의 배려인 듯했다. 메인 오두막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샤워실은 공사 중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진 쓸 수 없고 대충 봐도 완공되려면 1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이런 공간에서 깔끔하게 제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필 이 시점에서 생리가 터진 나는 걱정이 앞선다. 내 눈치 없는 자궁벽. 하필 이때 무너질게 뭐람. 


메인 오두막 출처: Will Steger wildness center facebook

 Will과 다른 크루들이 모여 있는 메인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마녀 배달부 키키> 속에 나올 법한 작고 낡은 오두막 안에는 아일랜드식 부엌을 뒤로 큰 식탁과 소파 그리고 의외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물이 귀한 곳이라 그런지 부엌 한 켠에는 음식물만 대충 씻어낸 기름기가 그대로인 접시들이 있었다. 낡은 바닥 때문에 걸을 때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났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풍스러움을 가미해주는 효과음 같았다. 



오두막 안 출처: Will Steger wildness center facebook



 긴 금발머리를 보기 좋게 땋은 로라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로라는 오로라의 애칭으로 이름답게 빛이 났다. 예쁘장한 외모에 다부지면서도 늘씬한 로라는 우리와 또래였다. 일리에 살고 있는 로라는 어릴 적부터 센터를 드나들며 방학 때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영어가 서툰 내가 말할 때도, 최대한 귀 기울여 듣는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고, 악이라곤 한 점도 없을 것 같은 선한 인상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샤워실도,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이곳이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음, 불편할 때도 있어. 맞아. 가끔은 너무 씻지 못해서 피부가 가가려울 때도 있으니까. 하하. 그래도 난 여기가 제일 편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서 조용히 명상이나 요가를 할 땐 마음이 정말 평화로워지거든.”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녀의 대답이 처음으로 이 곳에서의 이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로라가 요가하기 좋은 장소를 나중에 알려주겠단다. 요가는 할 줄 모르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명상이라도 시도해봐야겠다. 혹시 모른다. 이주가 지난다면, 나도 로라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때가 잔뜩 낀 옷차림에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을지. 




 우리를 위한 텐트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오늘 하루는 게스트를 위한 오두막에서 묵기로 했다. 제나를 따라 메인 오두막 건너편 풀숲을 한참을 따라 올라가니 꽤 큼직한 2층짜리 통나무집이 보인다. 숲이 이렇게나 우거진 곳 한가운데에 집을 지을 이유가 무어 람. 통나무 집을 열어 보니 곰이나 여우, 늑대가 사람 대신 살고 있어도 하나도 이상 할 것이 없을 정도의 내부가 보였다. 부엌이 있긴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부엌의 역할은 전혀 하지 못했고, 2층이 있긴 하지만, 왠지 으스스한 기운이 물씬 풍겨져 나와 결국 청빈이 와 나, 혜리는 1층 거실의 소파를 하나씩 침대 삼아 자기로 했다. 소파는 물론 오래되어 케케묵은 먼지가 가득해 그 위에 침낭을 올렸다. 그 밑으로 기어 다니는 온갖 종류의 벌레는 덤이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침낭에 누워 내가 물었다. 원래 늘 재잘거리던 우리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다들 속내가 깊어 말은 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여기가 그래도 텐트보다는 나은 것 같아.”


역시 긍정 왕 청빈이다. 


“맞아, 아까 보니까 화장실도 뒷문 바로 옆에 있더라. 아까 갔던 화장실 보다 냄새가 덜 나.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싸진 않는 가봐.”


최고 연장자가 되어서, 우는 소리를 할 순 없다. 나도 정빈이의 긍정에 한 스푼 보태본다. 


“아까 산 고양이도 봤어. 엄청 귀여워.”


  분위기 메이커인 혜리도 거든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든든하다. 미국 인턴십을 위해 미네소타에서 만난 우리는 이렇게 무언으로 긍정의 결의를 맺었다. 잘해보자는. 


  야생동물이 나오면 어쩌나, 곰이 갑자기 문을 두들기면 어쩌나, 밤 중에 다 자고 있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지 하는 오만 가지 걱정으로 우리는 하늘에 수놓아진 별의 수만큼 잔뜩 수다를 떨었다. 말로 나타난 걱정들은 어느새, 공중에 흩어져 우리는 꽤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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