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누드 사우나>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은 센터 전체가 들썩거린다. 바로 사우나가 개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모건(로라의 친구로 역시 우리와 같은 나이의 봉사자이다)에 말에 의하면 사우나 후, 바로 앞에 있는 호수로 뛰어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단다. 뜨거움이 주는 ‘시원함’은 한국사람들만 아는 줄 알았는데 만국 공통이라니 그저 놀라울 다름이다. 샤워실도 없는 이 시골에서 자연식 사우나를 하게 될 줄이야. 우리 셋은 아침부터 들떴다. 어떤 포즈로 호수에 다이빙을 할까 재잘거리면서. 게다가 사우나가 끝나고는 모닥불을 지피면서 봉사자들끼리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식탁에 놓인 마쉬멜로우를 보니, 모닥불에 마쉬멜로우를 구울 모양이다. 고구마나 옥수수가 아니라 좀 아쉽긴 하지만, 내 입꼬리는 벌써부터 씰룩거린다.
“안드레아, 청빈, 혜리! 사우나하러 안 가?”
5시가 되자마자 모건과 로라 그리고 제나가 우리를 부른다.
“아, 나는 혜리랑 청빈이 가 오늘 설거지 당번이라 조금 도와주고 갈게. 먼저 가 있어!”
식사 후 뒷정리를 하고, 목욕용품을 챙기니 벌써 6시가 다 되어갔다. 사우나에 가보니, 조용하다. 아마 벌써 다들 사우나를 한차례 끝내고 모닥불을 준비하러 간 모양이다. 크지 않은 곳이라 오히려 셋이서 오븟하게 수다나 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누드로 들어갈 순 없어 사우나실로 들어가기 전, 짧은 반바지와 나시티로 갈아입는데도 벌써부터 우리는 신이 났다.
“나 먼저 들어가 있을게”
먼저 준비를 다 끝낸 내가 기대를 잔뜩 품고 문을 열었다. 뿌연 연기 사이로, 다리 두 개가 보인다. 목공 기술자 제이슨이다. 정확히는 올 누드 상태의 제이슨이다. 나는 문을 열었던 그 자세로 다시 문을 닫았다. 웁스 사고다 사고. 누드 사고.
“언니 왜 안 들어가?”
“우리 못 들어가. 제이슨 있어.”
아마 사우나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 올 누드 상태로 있었던 모양이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어야 하나, 인기척을 냈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 쥐구멍을 파고 숨고 싶었다. 그때, 아주 평화로운 표정의 제이슨이 나왔다. 다행히 하체에는 수건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기 위해 - 혹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꿎은 옷만 털고 있었다. 그러자 제이슨은 호수를 바라보며 수건을 턱- 내리고 나체로 호수에 뛰어들었다. 이번엔 혜리와 청빈이가 당황했다.
“헐, 쟤 다 벗은 거?”
“응, 다 벗은 거.”
당황한 정빈이의 질문에 내가 덤덤히 대답했다.
알고 보니 사우나는 남, 녀 상관없이 모두 누드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은 제나가 깔깔 거리며 즐거워한다.
“하하하하, 미안해.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데. 엄청 당황했겠다.”
만약 그 날 설거지 당번이 아니었더라면, 본의 아니게 모든 봉사자들의 나체를 볼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제이슨이 내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고. 맹세코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뭐 누군가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면 그걸로 되었다.
<라면 열풍>
라면을 넉넉히 챙겨 온 덕분에 며칠째 저녁을 라면으로 먹고 있다. 김치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떡국용 떡이 들어가지 않았어도, 신라면은 매번 맛있다. 며칠을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다. 끝에 햇반을 데워 두어 개 말아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라면을 먹을 때마다 은근히 피곤하다. 라면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노라면 봉사자들이 한두 명씩 다가와 냄새가 좋다며 한 마디씩 하는 통에 마지못해 ‘너도 먹을래?’라고 권하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응 먹을래.’
끓이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소중한 라면 한 봉지를 내 줄 순 없어 결국엔 우리 셋이 요리사가 되어버린다. 물을 끓이고, 면이 설익었을 때 즈음 젓가락으로 찬공기를 불어 넣어 주면서 쫄깃하게 만들어 준다. 계란은 비릴 수 있으니 완숙으로 만들어준다. 이렇게 ‘그래, 이왕 먹을 거면 맛있게 먹어라.’ 하는 마음에 정성을 다해서 한 개, 두 개 끓이다 보면 두 개가 어느새 대여섯 개가 되어버린다. 그렇게나 많은 라면을 끓이고 드디어 한 숟가락 뜨고 있노라면 피곤이 몰려오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뿌듯함이 앞선다.
“짜식들,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