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밑 세상에는>
슥슥슥슥-
한참을 자고 있는데 텐트 천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지만, 계속되는 불쾌한 소리에 눈이 절로 떠졌다.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깔린 텐트 속을 아무리 훑어봐도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가 없다.
슥슥슥슥!!
이상하게도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바닥이 조금씩 들썩거린다. 청빈이랑 혜리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고, 나는 순간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껴 몸이 굳어버렸다. 작은 물체는 텐트를 가로질러 숲 속으로 가버렸다. 텐트 밑으로 들어 올 정도의 몸집이라면 쥐 아니면 두더지다. 어쨌든 둘 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다. 다음 날, 청빈이 와 혜리에게 간밤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냐고 물었다.
“아니,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리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어김없이 두더지인지 쥐였는지 모를 그 물체는 어김없이 텐트를 가로질러갔다. 꽤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가끔은 텐트 밑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귀여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제는 소리가 들려와도 그냥 눈을 감고 그렇게 텐트 밑 세상에 사는 이웃들을 감상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사히 이 텐트를 건너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응원하면서.
<Café Hobo>
센터 마을 가장 밑, 호숫가 바로 옆에는 Café Hobo가 있다. 카페 호보 옆 작은 오두막에는 사진작가 존과 한 때 Will씨와 함께 모험을 했던 썰매개, 제스퍼가 살고 있다. 커다란 몸집, 시베리안 허스키 특유의 매서운 눈빛과는 다르게 제스퍼는 순한 성격이다. 짖는 일도 드물뿐더러 나 같은 이방인의 손길에도 가만히 있는다. 다만 제스퍼는 물을 무서워한다는데, 그건 모험을 했을 적에 얼음이 갈라지면서 그 밑에 빠져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제스퍼는 잔뜩 풀이 죽어있다.
사진작가 존은 지긋한 나이의 사진작가이다. 갈비뼈가 다 보일 듯한 깡 마른 몸에 키는 180을 족히 넘어 거의 190은 되어 보인다. 제스퍼와 함께 내가 심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다. 마치 오래된 나무에서 느껴지는 품격 있는 결 같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직접 사진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본인의 철학에 대해서 들려주곤 했다. 당시에 영어가 짧은 나는 그의 심오한 철학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연출된 아름다운 것들을 찍는 것보다는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날 것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사진엔 화려한 드레스 대신 진흙이 잔뜩 묻는 옷을 입은 가지각색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델들이 있다. 카페 호보를 찍은 사진에는 편안하고 푹신한 소파 대신 의자의 기능만 겨우 하는 낡은 철제의자와 비만 겨우 가려주는 말만 ‘카페’인 호보 그대로가 보인다. 안으로는 호숫물에 대충 행군 통일성 없는 식기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듯한 오래된 양념장이 놓여 있다. 아마 인종도 국적도 통일성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나 둘 두고 간 것일 것이라 짐작된다. 소품 하나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예쁜’ 구석 하나도 없는 사진을 한 참이나 보았다. 삶이 그대로 드러난 날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의 철학에 공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