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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Sep 14. 2020

(캄보디아) 씨엠립에서의 일기 모음

앙코르와트



<찢어진 바지>

 

  과자를 사러 마트로 향하는 길,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청바지가 찢어졌다. 주차된 오토바이의 날카로운 부분에 청바지가 걸렸는데 그걸 미처 보지 못했던 탓이다. 다친 곳은 없지만, 청바지가 너덜너덜해 종아리가 훤히 다 보인다. 너덜거리는 부분을 다 찢어버리고 반바지로 만들어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럼 반대쪽도 찢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어 그냥 시장에서 바지를 하나 사기로 했다. 너덜거리는 청바지를 입고 ‘그나마’ 좀 나은 바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무척 화려하고 코끼리 무늬가 있는 퍽 ‘동남아’ 다운 바지를 하나 골랐다. 화려한 옷차림은 영 내 취향이 아니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니까. 사실, 현지에서 산 것 같은 나시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유럽 여행객들이 꽤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여행지에 푹 빠져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색은 그나마 얌전해 보이는 초록색을 고른 걸 보니, 로마의 법은 반쯤만 따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사자마자 찢어진 바지를 훌렁 벗어버리고 입어보니, 냉장고 바지에 맞먹는 시원함과 통풍 기능에 감탄했다. 그날 온종일 틈이 날 때마다 나풀거리는 다리의 코끼리를 흐뭇하게 감상했다. 앙코르와트 투어를 함께 할 행운의 복장은, 너로 정했다. 왠지 최신 유행하는 ‘자유분방함’이라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트렌디함이 맘에 쏙 드니까.

 


<앙코르와트 가는 길>


 새벽 4시 30분, 숙소 앞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오늘은 대망의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는 날이다. 새벽이라고 길거리가 텅텅 비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활기가 넘친다. 유럽 배낭 여행객들은 자전거로 툭툭이 옆을 지나고 있고, 나와 같이 손님을 태운 툭툭이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큰길에서 합쳐진다. 그나저나 새벽바람이 이렇게 매서운 줄 몰랐다. 반소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두꺼운 카디건이 절실하다. 너무 추워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달렸다. 

 사실, 캄보디아로 여행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몇 달 뒤면 값이 오른다는 앙코르와트 입장 요금 때문이었다. 내가 간 날은 입장료 인상을 며칠을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도 1일권에 20달러라는 요금은 캄보디아의 물가에 비해 절대 저렴하지 않다. 몇 주 뒤면 30달러가 넘는다던데, 너무하다 싶다. 이렇게나 많은 관광객이 그렇게나 많은 돈을 국가에 지불하면 뭐 하나.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입으로, 코로 들어갈 텐데. 매표소에서 입장료 인상에 관한 현수막을 보고 있자니 톤레삽 호수에 매일 흔들리며 사는 사람들이 떠올라 씁쓸하다. 어쩜 부정부패는 이렇게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지. 





<앙코르와트의 일출>


“아가씨, I know the best spot.”


혼자 입장하는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든다. 앙코르와트 내부 투어를 해주겠다는 현지 가이드들이다. 일출 장면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를 알려준다는 말에 솔깃하지만, 툭툭 기사님의 신신당부를 떠올리며 애써 뿌리친다. 톤레삽 호수에서 있었던 ‘친절한 사기꾼’ 사건을 말했더니, 큰일 날 아가씨라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가 많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안에 들어가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달라붙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도 해주셨다. 


“일출을 보려거든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마치 미지의 세계 속에 있다가 다른 세계를 본 사람들처럼 앙코르와트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였다. 아직은 어둑해 사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큰 스케일에 소름이 돋는다. 안으로 더 들어가려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는 곳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언니에게 빌려온 카메라도 꺼내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끝냈다. 새벽에 잠을 거의 못 잔 탓에 졸음이 몰려오고, 여전히 춥고, 벌레는 득달같이 달려들지만 서서히 올라오는 태양에 숨을 죽였다. 백일홍 봉오리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자태와 그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는 야자수들을 뒤로 해가 떠오른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숨을 죽인다. 그 눈부심 속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앙코르와트의 정문은 서쪽을 향해 있다.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정문을 둔 것은 그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현재의 삶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의 진시황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사후세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산물이니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인간의 집착과 불확실함은 현재의 원동력일지도. 


이런 산물들은 참 아름답고 신비하지만, 고대인들처럼 사후세계를 위해 현재를 낭비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들 하는데 본적도 가본 적도 없는 저승을 위해 현생을 그대로 바친다는 것은 어리석다. 그냥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낸다면 오늘도 내일도, 나중엔 죽어서까지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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