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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14. 2023

어느 별에서 왔니?

그 별은 로즈골드빛일 거야.

"킬포가 뭐예요?"

2020, 당시 스물다섯 청년이 팬들의 댓글을 읽으며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제작진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줄임말이나 신조어에 좀 약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쉰넷 인 나도 아는 단어를, 해외에서 10년을 살다 온 내 딸도 아는 말을 모른다고? 참 신기한 아이네, 귀엽네.'라는 생각을 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부터가 내 궁금증의 시작이었다.

'이찬원,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이찬원은 96년생이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다.

96년, 97년생인 내 두 딸과 또래이다. 그래서 그들 또래들만의 문화와 취향과 관심사를 엄마인 나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알고는 있다고 생각을 한다.

또래의 귀여움과 발랄함도 많은 이찬원이지만 내 딸들과 같은 10대를 살았고, 같은 20대를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자주 있다.


노래 취향부터 그렇다.

아이돌이나 언더그라운드 밴드 노래를 좋아했던 큰딸과 발라드나 힙합을 주로 듣던 은 딸과는 달랐던 이찬원의 노래 취향이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도 혼자만 트로트를 불렀다고 한다. 초중고 대학, 네 번이나 출전했던 전국노래자랑에서의 선곡도 모두 트로트였다. 나도 모르는 4,50년대 트로트까지 모두 알고 있어서 너무 의아하다.

7080 포크송을 잘 알고, 팝송도 컨트리송을 부른다. 롯데껌, 해태 부라보콘, 농심 새우깡 CM송을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린다.


방송 취향 또한 독특하다.

초등학생 때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는 라디오 취향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을 즐겨봤고, 가요무대 오프닝송도 알고 있다. '사랑과 전쟁' 재방송 채널을 줄줄 외울 정도로 광팬인 것도, 고전 코미디를 모두 알고 있는 것도 너무 신기하다.


좋아하는 영화와 책도 상상초월이다.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면 여한이 없겠다'라며 내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감상평과 함께 감명 깊게 본 영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고, 나도 읽었었지만 책제목도 기억이 안나는 그 옛날에 백지연 아나운서가 쓴 '뜨거운 침묵'을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글씨체도 요즘 아이들 같지가 않고, 글을 쓸 때 한자를 섞어서 쓰는 습관도, 어휘 선택이나 띄어쓰기, 문단나누기등을 신경 쓰는 면도 그렇다.


그뿐인가! 요리하는 모습과 메뉴들에 입이 떡 벌어진다.

칼질 내공과 뚝딱뚝딱하는 요리는 마치 살림고수 50대 이상 주부를 보는 듯하다. 있는 식재료로 당황도 하지 않고 손님대접을 하고, 집에서 김치와 된장을 담그고, 나물을 말리고, 도토리묵을 쑤는 20대이다.


20대 청년의 자취집 거실에 교자상이 펼쳐져 있고, 폐백 방석이 놓여있다. 할머니 스타일의 장바구니를 끌고 재래시장을 다닌다.

'남바 완, 돕바 등등'의 할아버지들이나 사용할 단어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남자도 화장을 하는 시대에 외모 가꾸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로션도 잘 안 바른다니 요즘 아이가 맞나 싶다.


좋아하는 음식이 '메기매운탕'인 것도 놀랍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비비빅'같은 우리 세대 취향의 팥이 들어간 것들이란다.


생긴 건 오목조목 귀엽고 어리게 보이는데, 말투나 제스처부터 여러 취향들이 도무지 내 딸과 같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오히려 한두 세대 위의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시대 사람인 것만 같다. 나와 국민학교를 같이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개인 취향이나 관심사뿐만 아니라 생각과 태도마저도 20대가 아닌 것 같은 이찬원이다.

명절에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까지 모두 챙기는 모습과 친구 부모님까지 신경 써주고 선배들과 어른들을 대하는 몸에 밴 예의바름은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개인주의 성향의 또래의 흔한 MZ세대들과 사뭇 다르다.


바뀐 나이로 현재 스물여섯 살의 이찬원이다.

내 두 딸과 비교해도 좀처럼 요즘 아이들 같지가 않은 면이 많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 중에서 이찬원의 개성은 그래서 더 독보적이다. 그런 유니크함이 오히려 이찬원의 매력이다.


또래들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것만 같은 이찬원은 시간여행 중인 과거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된다.

주위의 MZ세대들과는 다른 취향과 생각을 가진 이찬원은 지구의 과거 세상의 모습을 한 아주 먼 별에서 온 외계인 것만 같다.


"이찬원, 너! 어느 시대에서 왔니?"

"이찬원, 너! 어느 별에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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