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Nov 18. 2023

수리를 못하는 수리공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남편의 출장길에 동행해서 한국에서 1주일, 태국에서 4일을 보내고 인도의 내 집으로 돌아왔다. 고장이 나서 속 썩였던 에어컨과 정수기가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그동안 그것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던지 여독마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속이 후련하다는 기분을 절절하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인도에서 다시 살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고, 처음부터 고장이 나있던 내 방의 벽걸이 에어컨은 두 달 내내 여러 번의 수리에도 여전히 더운 바람만 뿜어대었다.

미국에 사는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답변을 받는데 1주일이 걸렸고, 거의 매주 들락거린 수리공은 왔다 하면 1시간은 족히 내 집에 머물면서 두 달째 집만 엉망으로 만들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실외문제라고 들락거리면서 먼지 발자국을 온 집안에 찍어놓았고, 실외기 연결 선이 문제인가 보다며 벽에 뚫린 구멍에서 시멘트 가루를 방바닥에 잔뜩 뿌려 놓았고, 전기장치가 문제인가 보다면서 허름한 장비 가방에서 무섭게 생긴 전기도구를 꺼내 들었고, 에어컨이 문제인가 보다면서 벽에서 떼어낸 에어컨을 살피기를 1시간, 결국엔 다음날 다시 오겠다며 덩그렇게 방바닥에 에어컨을 놓아두고 방치하기를 1주일이었다.

새 에어컨으로 교체를 해 달라고 했지만 고칠 수 있다는 장담만 하는 그들이었다.


때로는 연락도 없이 현관벨을 누르는 그들에게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기가 싫어서 우리가 한국에 간 사이에 와서 수리를 하라고 했다. 현관문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아줌마와 운전기사에게 부탁을 해 두었다.


다시 돌아온 인도 내 집, 내가 있던 두 달 동안에는 못 고쳤던 에어컨이 작동을 했다. 찬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 신기하기는 처음이었다.

사람마음이 그랬다. 두 달 동안의 스트레스가 찬바람에 모두 날아가버렸다. 고쳐졌으면 되었다. 인도는 그런 나라이다. 그렇게 살아지는 나라이다.



커다란 생수통에 수동 펌프기를 끼워서 사용했던 10여 년 전보다 많이 편리해진 인도이다. 정수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는 않지만 정수물로 설거지도 할 수 있고, 야채도 씻을 수 있고, 양칫물로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그런데 사용한 지 한 달 만에 필터교체를 하라는 알람이 귀를 쪼아대 듯이 울렸다. 아무리 석회수를 정수하는 필터라지만 한 달은 너무 하다 싶었다. 정수기도 집주인이 달아 준 것이어서 이메일을 보내고 또 일주일을 기다렸다.


정수기 수리공이 맞나 싶은 허름한 차림의 앳돼 보이는 남자가 왔다. 영어도 전혀 못하는 그는 다짜고짜 정수기를 벽에서 떼어내더니 한참 동안 정수기를 만지고 나서 필터 문제가 아니라며 전기선이 끊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인가? 물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 여태 잘 쓰고 있던 정수기를 오히려 고장을 내버렸다. 영어를 못하니 말도 안 통하고, 수리비는  집주인이 내는 것이니 알았다고 했다.


끊어진 전기 부품을 가지고 2~3일 뒤에 온다던 그 어린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1주일 뒤에 다른 사람이 와서 전기선을 고치기는 했는데 여전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와 통화만 주구장창 해대며 또 1시간여를 보내던 그가 하는 말, 전기단자가 끊어졌다며 끊어진 부품을 보여줬다. 부품을 구해서 다시 오겠다던 그 남자, 또 1주일 뒤에나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부품을 교체했지만 여전히 정수기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물이 잘 나오던, 필터교체 알람이 시끄러워서 코드를 빼놓고 있었던 정수기는 세 사람의 수리공의 손을 거쳐서 아예 사용을 할 수 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에어컨과 정수기 수리공이 동시에 드나들었던 한 달 동안은 정말이지 현관벨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쭈삣 설 정도였다.

결국엔 정수기도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 와서 고치라고 하고 그들을 집안에 들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두 주만에 돌아온 인도 내 집, 정수기도 작동이 잘 되고 있었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전제품 A/S 시스템이 너무 좋은 한국에서 살다가 느리고, 잘 못 고치고, 오히려 더 고장을 내는 인도는 한국사람이 살기에 어려움이 많다. 10년을 살았건, 한 달을 살았건 마찬가지이다. 이 나라에 살면 느긋해져야 하고, 그러려니 해야 하고, 포기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 부분은 적응이 어렵다.


그래도 나는 정 많은 한국 아줌마가 아닌가? 화가 나고 속은 터지지만, 오히려 망가뜨리는 수리공이지만, 땀 흘려가며 나름은 열심히 고쳐보겠다고 애쓰는 그들에게 음료수는 대접한다. 그들이 그렇다고 나도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도 사람이고 나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다시 나오는 에어컨, 물이 다시 나오는 정수기, 그거면 되었다. 여기는 인도 아닌가?

이전 03화 인도 로컬 미용실의 유쾌한 3인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