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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Nov 04. 2023

영어 수업인지, 요리 강습인지.

나의 영어 선생님 부반스와리(Bhuvanswari)

집에서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공부를 한다고 영어회화 실력이 크게 느는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 살게 된 인도에서 꾸준하게 해 보기로 한 것 중의 하나가 요가와 더불어 영어 공부이다.


특별한 목적은 없는 공부이다.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에 살고 있으니 특별히 할 일은 없는 하루의 일부를 영어공부에라도 떼어주자는 단순한 생각이 그 시작이었다. 인도에서 살고 있으니 요가를 배워보자는 것과 마찬가지의 계기인 셈이다.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과외를 시작했다. 인도 동남부 지역의 타밀나두(Tamil Nadu) 억양이 강한 선생님의 영어가 여전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인도에서 영어공부를 하면서 인도 억양이 문제라고 핑계를 댈 수만은 없다. 내 영어는 억양이 아니라 어순부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 중에 가장 많이 대화를 하는 사람은 운전기사와 아줌마이고 그들과는 이고 뭐고 단어만 나열하는 영어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좋아지기는커녕 도로 퇴보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문법에 맞는 영어를 들어보고 말할 시간을 가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


나의 영어 선생님은 'Bhuvanswari'라는 이름의 힌두교인이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서른세 살의 엄마이다. 초등학생인 딸은 학교에, 두 살짜리 아들은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비싼 이 나라의 학비에 보태려고 과외를 하러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자기 친정엄마와 나이가 같다고도 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되었다. 그 공부란 것이 특별할 것도 없다. 전날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바른 문장으로 고쳐준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1시간을 보낸다. 30대 젊은 인도 아줌마와 50대 한국 아줌마의 수다의 시간이다.


주부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느냐, 나는 뭘 먹었다. 인도 음식은 뭘 좋아하느냐, 다음에 내가 만들어 올게.' 그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우리 아파트에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아이가 있는데 1시 45분, 내 수업이 끝나면 그 집으로 넘어간다. 2시가 되기 전에 선생님의 점심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데 남의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가 미안한지 자꾸 같이 먹자고 나에게 권한다.


인도 집밥이라는 것이 일단 보이는 모습이 장벽이다. 한국 사람 눈에는 그다지 숟가락을 대고 싶은 마음이 없게  만드는 낯선 음식들이다. 십 년을 넘게 산 인도이지만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권하는 음식을 자꾸 거부할 수가 없어서 같이 먹기 시작했다. 반 숟가락부터 시작한 생님의 도시락 나눠먹기는 한 숟가락, 이제는 내 몫 한통을 다 먹고 있다. 영어 과외비에 음식값도 얹어서 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이다.


다시 온 인도에서는 잘 안 먹던 인도 음식도 모두 잘 먹게 되었고, 하물며 모두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한 향신료도 거부감이 없어졌고, 생소한 비주얼에도 손이 간다. 영어선생님의 집밥을 먹게 된 이유가 큰 것 같다.

인도 집밥이 보는 것과 다르게 막상 먹어보면 맛이 있다. 식당에서 먹던 인도음식과는 다르게 담백함과 깊은 손맛이 느껴진다.


선생님도 나도 주부이다. 그래서 도시락을 먹으며 음식 레시피를 서로 공유한다. 주로 내가 인도 음식 만드는 법을 궁금해 하지만 김치, 김밥, 볶음밥 같은 한국 음식 레시피도 알려준다.

고기를 못 먹는다고 해서 종교적인 이유로 베지테리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육고기만 못 먹는다는 영어선생님은 김밥과 야채 볶음밥과 오징어 파전에 관심을 보였다.

기회가 되면 같이 만들어서 먹어보기로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도시락 반찬통으로 사용했던 것과 거의 같은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매번 비슷해 보이는 다른 밥을 싸 다니는 선생님의 도시락 메뉴는 그날 수업 이후의 또 다른 대화 주제가 된다.


내가 맛있게 먹으니까 요리법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내가 만들어서까지 먹고 싶은 음식도 가끔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렇듯이 자기 나라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어서 열심히 들으며 메모도 한다. 이 또한 영어 공부도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1시간으로 정해진 영어 수업 시간은 도시락을 같이 먹는 10여분이 자동 연장된다. 무료 수업이나 마찬가지인 그 10여분이 나는 오히려 더 집중이 되고 흥미롭다.


유튜브로 요리과정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인도 음식은 '장님이 만진 코끼리'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외국인이 불고기, 비빔밥, 김치가 한국 음식의 전부인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인도 음식은 난, 도사, 비리야니, 사모사, 밀즈 등이 전부였었다.


한국에도 그렇게 많은 음식 종류가 있는데 역사도 더 깊고, 나라도 크고, 환경과 날씨도 지역마다 다른 인도는 오죽할까?

향신료가 선입견을 갖게 했고, 그래서 우리 입맛에 맞는 난과 도사, 탄두리치킨과 소스 몇 종류, 그리고 사모사, 라씨, 짜이만 줄곧 먹었었다. 인도 집밥을 먹어볼 기회가 거의 없으니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인도 음식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선생님의 도시락 덕분에 다양한 인도 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레시피까지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에 이틀씩 두 달이다. 앞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인도 음식을 접해 볼 것이며 그 레시피를 알게 될 것인가 말이다.


나의 영어 수업은 영어공부와 동시에 요리 시식과 강습이 되고 있다.

음식솜씨 좋은 영어 선생님 덕분에 자기 엄마와 나이가 같다는 학생인 나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은 인도 음식을 시식해 보는 날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가 많아서 레시피를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요리라는 것이 어차피 재료만 다를 뿐 요리법은 비슷한 것이 많아서 익숙한 재료로 변형해서 시도해 볼 만했다.


인도 감자조림에 맛살라 파우더 대신 강황가루만 넣어보라고 말하는 영어선생님과 한국 파전에 파 대신 인도사람들이 좋아하는 고수로 대체해 보라고 설명하는 나는 인도주부이고 한국주부이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고, 맏딸이자 외딸이어서 친정 엄마와도 잘 지낸다는 영어선생님은 친정엄마와 나이가 같은 내가 편한 것 같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인도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수다만 떨어도 되는 수업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영어 회화공부도 하고, 요리 강습도 받는 영어과외 시간은 나도 만족스럽다.


영어실력이 눈에 보이게 느는 것도, 인도 요리 레시피가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지만, 영어 수업인지, 요리 강습인지 모를 나의 인도에서의 월요일과 금요일은 그렇게 지난다. 재미있고 편하게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영어 수업이 끝나면 영어선생님이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도시락을 못 싸 온 날에는 배달앱으로 주문을 해서 같이 점심을 먹곤 한다.



도시락으로 우리나라 '버무리떡'과 비슷한 음식을 싸 온 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고 했더니 레시피 영상을 찾아서 보여줬다. 압력밥솥의 증기 나오는 곳에 끼워서 쪄내는 요리도구에 관심을 보였더니 다음에 사다 주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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