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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Nov 11. 2023

인도 로컬 미용실의 유쾌한 3인방

다시 와서 살고 있는 인도이다. 4년 만에 왔지만 내가 살았이곳으로 빠르게 흡수가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하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장소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돌아간 한국에서 나의 지난 10여 년의 인도가 후회가 되었던 많은 것들 중의 하나는 인도 사람이 아닌 한국사람들만 사귄 것, 한국사람들이 가는 곳만 다닌 것이었다.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던 인도에 다시 왔으니 후회되었던 것들을 채워보고 싶었다.


인도에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어김없이 새치가 귀밑과 가르마 양 옆으로 하얗게 올라와서 신경이 쓰이는 정도가 되었다. 미용실을 가야 했다. 구글지도를 뒤져가며 거리, 사진, 후기 등을 참고해서 우리 동네 주택가 골목 안에 깊숙하게 자리한 여성전용 미용실을 찾아냈다. 거칠고 곱슬인 인도여자의 긴 머리가 반짝반짝 생머리가 된 사진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인도, 첸나이에도 세련된 브랜드 미용실이 많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해야 하는데 도심 외곽지 아파트에 자리를 잡은 나는 매번 멀리 다니기번거로웠고, 겨우 '새치염색'인데 '굳이'라는 생각이었고, 될 수 있으면 동네에서 해결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아파트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주택가 골목 안에 생뚱맞게 미용실 간판이 걸려 있었다. 주변에 가게라고는 없는, 우리나라로 치면 4층 빌라 건물의 1층이 미용실이었다.

동네 미용실치고 깨끗했고 시설도 괜찮았다. 첫눈에 잘 찾아왔다는 직감을 했다.


외국인은 내가 처음인 듯했다. 어리둥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개성 각각 외모의 세명의 미용사반갑게 맞아주었다.

마르고 긴 머리에 웨이브를 넣어서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여자는 한눈에도 미용사라는 느낌을 주었고, 통통하고 인상 좋아 보이는 여자는 미용사가 맞나 싶은 평범한 헤어스타일과 차림새였고, 어려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는 호기심 어린 큰 눈을 반짝였다.


뿌리염색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세련돼 보이는 미용사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손님은 나 혼자가 전부였고, 세 명이 나를 둘러싸고는 뚫어지게 얼굴을 쳐다봤다.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이 먼저 들렸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 "북한?, 남한?", "남한!"

그렇게 출신성분(?)을 밝히고 새치머리 염색을 시작했다. 헤나가 아닌 내추럴 브라운으로 염색약을 바르는 동안 그 세 여자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염색약을 바르고 기다리는 1시간 동안 페디큐어를 하지 않을래?", "우리 가게는 마사지도 잘한다", "얼굴, 어깨, 등, 전신 마사지 모두 추천한다". 셋이서 돌아가며 한 마디씩 보탰다. 기다리기 지겨우니 발 페디큐어를 받아보기로 했다. 귀가 얇은 나는 바로 영업을 당하고 말았다.



염색약을 바르고 옆 방에서 발 케어를 받는 동안에 열일곱 살의 수습생이라는 귀여운 소녀가 턱밑에 앉아서 눈을 반짝이며 물어봤다. "남한에서 왔으면 BTS 봤겠네요?".  "나도 TV나 유튜브에서만 봤어."

나도 다 못 외우는 BTS 일곱 명의 이름을 모두 읊는, 영어도 잘 못하는 소녀의 한국어 이름 발음은 가이 놀라울 뿐이었다. '뷔'가 귀엽고 노래, 춤도 잘 춘다며, 소위 자기의 최애라고 했다.

11월에 한국에 잠시 다녀올 건데 그때 뷔 사진을 구해서 주겠다니, 그 소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까만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한민국, 사우스 코리아의 자랑, BTS가 매개가 되어서 발 케어를 받는 한 시간 동안 내가 궁금한 것들, 그녀들이 궁금한 것들을 서로 묻고 대답하며 미용실의 공기는 유쾌함과 웃음소리 가득 찼고, 그녀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잘 웃고, 사교적인 미용사 3인방 덕분에 인도 로컬 미용실은 방문 첫날에 한국의 우리 동네 단골 미용실처럼 친근하고 편해졌다.

매달 한 번씩 뿌리염색을 하러 오겠다고, 2주쯤 뒤에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올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꼭 기다리겠다며 좋아하는 그녀들이었다.


수습생 소녀가 같이 셀카를 찍자고 했다. BTS의 나라 사우스 코리아에서 온 아줌마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부탁에 화장도 안 한 퀭한 얼굴로 셀카 찍힘을 당했다.

아마도 그 3인방의 가족, 친구들에게 내 얼굴이 모두 공개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덕분에 누구라도 즐거우면 되었다.



그날로부터  휴일에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간 적이 있었다. 무방비 상태의 얼굴 피부가 강렬한 남인도 인도양의 태양에 엉망이 된 덕분에 1주일여 만에 다시 찾게 된 미용실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갔더니 그 시간에 모두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 첫 손님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이 명했다. 민망했지만 나 역시 싫지가 않았다. 


그날은 통통하고 착해 보이는 미용사가 얼굴 마사지를 해 주었다. 얼굴에 뭘 두껍게 발라놓고 눈도 감고, 말도 하지 마라면서 돌아가면서 자꾸 말을 시켰다. 나는 그녀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외국인 아줌마 손님이었다.


마사지 후에 실 눈썹 정리를 권하는 그녀의 영업에 또 넘어가고 말았다. 호기심이 생긴 터라 해보기로 했는데 겨우 50루피(약 800원)라고 했다.

실을 입에 물고 꼬아서 당겨가며 눈썹정리를 해주는데 너무 신기해서 자꾸 감탄사를 뱉었더니 셋이서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또 그렇게 한 시간여,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사지도, 눈썹정리도 만족스러웠다.



한 달 뒤에 또 오겠다 하고 미용실 문을 나서는데 그 유쾌한 3인방이 쪼르르 따라 나와서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분 좋은 헤어짐이었다.

내가 어딜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 싶어서 괜스레 뭉클하기까지 했다. 타국에서의 적응 기간에 마음을 나누어 준 그녀들이 고마웠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유쾌한 그녀들 덕분에 한 달에 한번 새치염색하러 가는 이 즐거운 기다림이 되었다.



한국에 다니러 갈 며칠 전에 인터넷 중고사이트를 뒤져서 BTS 사진을 미리 한국집으로 주문을 해놓았다. 그 사진을 들고 미용실에 갈 예정이다. 좋아서 폴짝폴짝 뛸 수습생 소녀의 표정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말과 문화가 다를지라도 마음은 누구나 읽을 수 있기 마련이고, 그 마음이 읽히면 친절과 상냥함이 보답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인도 사람을 사귀면서 인도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기로 한 나의 생각을 그 유쾌한 미용실 3인방이 단박에 해결해 주었다.


요가 선생님, 영어 선생님, 그리고 미용사들, 인도에 다시 와서 알게 된 인도 사람들이다. 인도 사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다시 인도에서 재미있게 살고 싶게 만든 사람들이다.


비행기를 갈아타며 10시간은 날아와야 하는, 한국인이 살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나라 인도, 이 도시 첸나이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살게 되는 것 같다.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냐'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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