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Feb 17. 2024

운전기사 존슨의 딸 리아와 아들 케빈

쿠마르, 락쉬미, 비노스가 아니고 존슨? 리아? 케빈? 인도 사람의 이름이 맞나 싶겠지만 크리스천인  내 차 운전기사와 그의 딸과 아들 이름이다.


인도에서 사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는 따로 운전기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도로 상황으로 인해서 쉽게 운전대를 잡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30만 원 남짓의 기사 월급이 도로 위에서의 긴장과 위험을 대신하는 것이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인도에 온 지 5년이 지난 즈음인 2013년에 처음 내 차 운전대를 잡은, 10년의 인연을 이어온 존슨이다.

갑자기 그만둔 이전의 운전기사 때문에 급하게 구한 임시 기사였는데, 그날로 내가 귀국할 때까지 6년 동안, 그리고 4년 에 다시 돌아와서 또 만나게 되었으니 그 인연이 보통은 아닌 듯싶다.


한국에서의 4년 동안 존슨이 WatsApp으로 간간이 소식을 전하고는 했지만, 이렇게 다시 인도에서 만나게 될 줄은 그 아이도 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늘 되짚어보는 존슨과 달리, 나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집중하며 사는 타입이라 지난 11년 동안의 인도에서의 인연들과는 장소, 시간, 사람 그 모두를 그저 추억으로만 한편에 담아 두고 지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멀리 한국으로 간 마담과 마스터와 딸들의 안부를 묻곤 했던 존슨과 한국 생활에 푹 빠져서 인도는 잊고 가끔 그리워하는 정도로만 지냈던 나와는 과거를 대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다시 만난 둘은 반가움의 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인도에서 사는 동안에 한두 번 보게 되겠거니 했지만, 내 편리를 위해서 내 차 운전을 다시 주면 좋겠다는 정도였지만, 존슨은 달랐다.

와이프가 운전은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해서 이것저것 딴 일을 하고 있었고, 운영 중이던 자전거 가게가 잘못될 무렵에 내가 다시 왔고, 와이프도 마담의 집이면 운전을 하라고 허락을 했다고 했다.


처음 봤을 때 28살의 총각이었는데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존슨은 38살의 애 둘 아빠되어 있었다.


고졸인 존슨이지만 대학 나온 아가씨와 연애결혼을 했고, 첫 딸 리아가 태어났다. 너무 기뻐하며 시골의 엄마보다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던 존슨이 아기 사진을 너무 자주 보여줘서 그 시절에는 나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우리 작은딸의 고3 시절, 입시 때문에 본인도 머리가 복잡한데, 학교에 가는 차 안에서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장래를 의논하기도 했단다. 와이프가 도시 생활이 힘들다고 고향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데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아직 애인 내 딸에게까지 물어봤단다. 딸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부모가 좀 들어도 도시에서 대학까지 공부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을 했단다.

지금도 존슨이 두고두고 얘기를 하고 있다. 그때, 마담과 마담 딸이 한 충고 덕분에 똑똑한 리아가 도시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어느새 8살이나 된 리아는 어릴 때도 예쁘고 똑똑하더니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그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참 사랑스럽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학비가 너무 비싼 인도에서 아이들 교육비로 수입의 큰 부분을 쓰고 있지만, 잘 자라는 아이들 덕분에 행복하다고, 리아는 자기들에게 행운이라고 말하는 존슨이다.


2018년, 리아. 존손 가족 셋과 폰티체리 여행을 갔었다.
2022년, 내가 선물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 2023년, 다시 만난 리아와 케빈



존슨의 아들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2019년 여름, 케빈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한국 방문 중이었고 그 해 연말에 남편이 귀국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케빈은 '폰티체리 베이비'라고 했다.

2018년 인도 명절 연휴에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명절에 기사를 부르기가 미안해서 존슨 가족들과 다 함께 1박 2일 폰디체리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때 케빈이 생겼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에어컨이 나오는 호텔에서 잠을 자봤다더니 아들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다시 인도에 돌아왔다.

태어났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케빈, 한국에서 지낸 4년 동안 watsapp의 사진으로만 커가는 모습을 보다가 4살이나 된 아이의 실물을 처음 보게 되었다. 존슨 와이프가 마담에게 인도집밥을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그 집에 찾아 간 날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존슨의 그 어렸던 딸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만 들은 아들이 눈앞에 서있는 그 시간이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방 하나, 거실, 부엌이 있는 존슨의 집 현관 앞, 마담을 베웅하는 아이들



아들 케빈은 얼마나 귀엽고 순수한지 시내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오다가 골목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마담에게 인사를 하라니까 부끄러운지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신발을 안 신어서 집에 가서 신발을 신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내가 가버리고 없어서 울고불고 난리였단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귀여웠다.


2019년, 케빈이 태어난 날. 2024년, 신발 신으러 집으로 뛰어가는 케빈과 그 모습이 귀여운 엄마의 함박 웃음


며칠 전에는 케빈 유치원 운동회 날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한국마담도 구경을 갔다.


'할머니 음이 이런 것일까?'라는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네 명의 존슨 가족과 함께 한 그 시간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케빈과 그 가족들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마침, 그날이 한국 설날이어서 세뱃돈을 한 푼씩 쥐어줬는데 왜 그렇게 내 마음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8월 학기 시작인 인도에서 7월 30일이 생일이라는 케빈은 반에서 가장 작았다.


어느덧 10년째 이어진 존슨 가족과의 인연이다. 머지않은 날에 나는 또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또 한국 생활에 집중하느라 이곳 인도에서의 시간들은 잊고 살 것이 분명하지만, 나와는 다른 마음으로 우리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슨과 그의 가족들은 잊지 않고 그들의 소식을 전해줄 것 또한 분명하다. 불현듯 그리울 인도가 존슨 가족의 일상을 통해서 그 그리움을 희석하게 될 것 또한 분명하다.


우연히 나와 인연이 된 존슨, 말만 많고 철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좋은 아내를 만나고, 예쁜 두 아이까지 둔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그 가정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하다.


귀국을 하게 되면 차츰 잊힐 수도 있겠지만 한국 마담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조금씩 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겠지만, 딸 리아와 아들 케빈이 커가는 모습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에서 살던지 꾸준히 보게 될 것이다. 존슨이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서, 마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watsapp을 늘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자라서 성인이 된 리아와 케빈이 마담이 살 한국에 놀러 오는 날이 오게 될까?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리아가 한국어도 배우고 싶다는데 대학생이 되어서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오게 되는 날이 생길까? 그때쯤이면 인도 경제가 지금과는 달라져서 서민들도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다닐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까?


10년 후에 그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그동안에 나와 그 아이들은 어떤 연의 끈으로 이어져있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연락은 못 하게 될 형편이 될지라도 서로 기도는 하고 있을 사이로 남았으면 한다.


나에게는 인도의 손주들이 있다.

이름도 예쁜 '리아'와 '케빈'이다.

이전 10화 인도 스타벅스에 오는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