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북리뷰
인간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 하나는 어느 시대에 살든 그 시대를 아우르는, 혹은 주도하는 패러다임이란 것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실체도 없는 그것은, ‘상상의 실재’가 되어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간의 삶을 뒤흔들며 한세상 신명나게 휘젓고는 다음 타자에게 그 권위를 이양하고 증발한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역사서에 화려하게 기록된다. 이미 한 세상 뒤처진 이들은 남은 기록들을 밑천으로 이전의 시대를 상상한다. 방방곡곡 이런저런 사건 사고들과 시대 철학, 사회 문화 등등을 근거로 한 시대를 포괄할 만한 패러다임을 명명한다. 모종의 암묵적 협의를 거치면 그 이름은 더욱 공고해진다. 어쩌면 이전의 시대를 살아간 당사자들은 정작 자신들의 삶을 뒤흔든 근간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른 채 떠나갔는지 모른다. 역사란 남은 자의 기록이니 말이다. 종교적 신화로 점철된 시대의 패러다임은 자본과 자유주의가 등판한 이후에야 그 승률을 논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풍미했던 자유주의도 이젠 그 권좌를 디지털 시대에 이양해야 할 때가 온 만큼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선수교체가 필요해졌다. 기존의 인지구조 자체를 뒤흔들어 버린 막강 타자의 출현으로 어쩌면 패러다임의 대대적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전의 시대와 달리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기술혁명은 시대정신이나 철학과 조우하기도 전에 우리 생활의 깊숙이 침투해 부지불식간에 삶의 기반을 이미 잠식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AI와 블록체인, 빅데이터, 생명공학...이 가공할 만한 네트워크와 업데이트로 인간의 미래를 저당잡는 동안 인류의 오랜 동반자이자 버팀목이었던 패러다임의 영역은 레임 덕에 시달리는 자유주의가 어정쩡하게 지키고 섰을 뿐이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어른 말을 죽어라 안 들었던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이 명언은 참으로 옳다. 아니, 참으로 옳았다. 20세기까지는 말이다. 이젠 어른들의 경험이나 조언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한 시대가 되었다. 이젠 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도,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도 인생의 지침이 아닌 공수표가 되게 생겼다. 그동안 인류가 중요하게 여겨 온 삶의 가치와 방식들이 21세기에도 과연 얼마나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 시대의 어른들은 디지털 세대에게 그 무엇도 확실하게 가르쳐 줄 수가 없게 되었다. 정작 어른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외려 그들 자신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어른들은 죄다 20세기 태생이다. 철학, 사상, 예술의 거장들 역시 그렇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를 가장 두려워하는 세대일지도.
유발 하라리가 남긴 21가지 주제들(21세기라 21가지로 정리했겠지?)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부분들에 대한 나름의 전망과 제언이지만 그 전반을 쥐고 있을 꼭지점에는 디지털 혁명이 있다. 어쨌거나 세상은 이렇게나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모른다. 그저 예측할 뿐이다. 다만 까딱하면 알고리즘의 노예로 전락할 공산이다. 이젠 우리를 이끌어줄 패러다임도 없다. 자유주의는 우주적 각본을 거부하고 인간 내적 드라마를 창조해 냈지만, 이 드라마는 디지털 시대에 무력할 뿐이다. 그리하여 저자의 제언은 우주적 드라마는 물론 인간의 내적 드라마까지 부인했다는 고대 불교로 회귀한다. “우주는 의미가 없으며 인간의 느낌에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덧없는 떨림이며 특별한 목적 없이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명상과 크리슈나쯤에 이르면 <아웃사이더>의 후반부에서 느꼈던 허탈함이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결국 새 시대에 맞는 (아직 비어 있는) 패러다임은 명상과 자기수양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그것도 대처 방안이라면 대처 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