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남쪽으로 간 까닭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탈리아 기행> 북리뷰

by 루이

만약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위대한 <파우스트>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피게니에와 타소는? 빌헬름 마이스터는?


‘젊은 베르테르’로 인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젊은 괴테는 전도가 유망한 위대한 작가답게 자신의 예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아무도 모르는 새벽, 여행 가방 하나와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짊어진 채. 그리고 오랜 염원이었던 이탈리아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북위 51도를 벗어나 북위 50도에서 점심을 먹고, 48도의 언덕배기에서 무화과를 맛보며, 45도에서 옛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베로나와 비첸차, 베네치아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동안, 괴테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어린 시절 가졌던 망상 - 언젠가 어느 영국인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 속의 대상이 아닌, 곤돌라 모형에서 연상된 막연한 이미지가 아닌, 실체하는 대상으로서 보다 즉물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괴테 자신은 홀로된 이방인의 이름으로 그에게 주어진 고독과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기로 한다.


인본주의 지리학에서는 ‘공간(space)’과 ‘장소(place)’의 개념을 조금 다르게 정의한다. 전자가 보편적, 객관적,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을 이른다면, 후자는 특수하거나 고유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을 가리킨다. 특히 ‘정서적인 끈을 형성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 예컨대 집, 고향, 마을 공동체 등과 같은 곳이 ‘장소’가 될 수 있으며, 같은 지역이라 해도 그것을 경험한 개인에 따라 ‘장소’의 색깔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여행이라는 것은 이러한 ‘공간’의 ‘장소化’에 혁혁한 공신이라 할 만하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공간’으로서의 영역이 그곳을 지나는 개인의 경험이나 추억과 같은 시간의 떼가 입혀지면 누군가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순서가 조금은 다층적, 역순행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여행이란 오랜 세월의 작정 끝에 떠나기도 하고, 주변인에 이끌려 가기도 하며, 홈쇼핑 단독특가의 유혹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그 계기가 다양하지만, 어쩌면 여행지의 선택에서부터 우리의 스키마가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인 누군가가 다녀와서 극찬해 마지않았던 곳, 혹은 예로부터 유명한 어딘가, 하다못해 어디선가 한 번이라도 주워들어 내 기억의 골짜기 한 귀퉁이에 잠자코 있었던 곳까지... 생면부지, 생면불청(?)의 공간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군가에게 ‘공간’이 ‘장소’로 변모되는 데 있어서, (방문 전후와 상관없이) 개인의 취향이 십분 발휘된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남들이 좋다는 곳도 내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으면 그저 무표정한 ‘공간’일 뿐이며, 모든 사람이 꺼리고 혹평하는 최악의 여행지도 나만의 호젓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마음 속 ‘장소’로 간직해 두었던 이탈리아, 특히 로마는 예술에 목말라하던 괴테의 취향으로부터 엄선된 영역이었으며, 괴테가 자신만의 예술적 발견과 통찰력을 담아내는 동안 이곳은 괴테에게 있어 더욱 풍요롭고, 두터운 ‘장소’의 한 켜를 형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새로운 세계에서 친숙한 대상과 마주친다.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이고, 또한 모든 것이 새롭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관찰 방식과 관념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없고 아주 낯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존 관념이 여기서는 아주 명확해지고 생생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와 기후, 중력에 대한 생각들... 길가다 마주치는 여인네들의 표정과 옷차림... 날씨와 기질, 언어의 상관관계... 식물의 생장... 건물의 재료가 되는 광물질들... 괴테의 관심사는 너무나 방대하고 다채롭지만 티치아노의 구도, 팔라디오의 신전 양식, 베로네세의 명화에 담긴 스토리, 구에르치노의 부활한 예수, 진짜 두 다리를 찾은 헤라클레스 상, 횃불 조명이 비추는 작품들을 볼 때 괴테의 눈은 더욱 빛난다. 자연과 고대 미술품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예술가의 안목과 시선을 터득해 가는 사람, 예술 작품와의 교감을 넘어 스스로 작품이 될 수 있는 사람, 여관집 아들에게서조차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찾아내는 사람, 괴테는 천생 예술가인 것이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괴테는 <이피게니에>, <에그몬트>, <에르빈과 엘미레>, <클라우디네> 등을 집필하였고, <타소>와 <파우스트> 등의 집필 계획을 구체화한다. 3부 로마의 두 번째 체류기에 이르면 문학 집필에 박차를 가하는 괴테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러고 보면 이탈리아는 괴테에게 있어 뮤즈이자, 갈라테이아였던 셈이고,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인생과 문학에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쯤에서 서두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만약 괴테가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했다면, 아니, 아예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면 어땠을까. 글쎄, 어떻게든 파우스트야 탄생을 했겠지만 그 성격은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까. (뭐, 확실한 건 <이탈리아 기행>이 쓰이지 않았을 것만은 분명하겠다.)


2001년 아무 생각 없이 로마를 스쳐갔고, 돌아와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훨씬 구체적인 ‘장소’로서 로마가 각인되었다. 2019년의 로마는 포로 로마노, 카라바지오, 베르니니와 함께 더욱 풍요로워졌다. 2020년 다시 읽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내 마음의 로마를 또다시 자극한다. 다음 번엔 파르네세의 몸통과 보르게세의 다리를 지닌 헤라클레스를 꼭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괴테가 심은 대추야자나무를 찾아 시스티나 거리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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