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 파리의 그림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북리뷰

by 루이

빈센트 반 고흐의 강렬했던 붓터치가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까닭, 갤러리가 아닌 창신동 대청마루에 걸린 박수근의 ‘납작납작 화법’이 더 짠하게 다가오는 이유, 그것은 아마도 이들의 천재적 예술성이 고단하게 살다간 삶 속에 묻혀 버린 데 있는지 모른다. 불세출의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 사후에 그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곤 한다. 시대적 조류를 늘 앞서 갔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았다면 그 예술가들은 운이 꽤 좋은 편이다. 예술가로서의 기승전결을 모두 맛본 이들의 삶은 전자들의 것보다 훨씬 세속적이기도 하지만 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이들의 삶에 ‘비운의’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로서 느낀 이들의 삶의 결은 과연 어떠했을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후자의 범주에 포함될 만했다. 호기로운 참전 용사, 기민했던 기자, 독특한 문체를 일군 소설가, 명성을 얻은 만큼 화려했던 여성 편력, 낯선 경험을 즐기는 종군 기자, 허풍 충만한 술꾼 마초, 작가적 슬럼프, 극적인 재기와 우울증, 그리고 권총 자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경험과 감수성,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과 넘치는 생의 에너지. 헤밍웨이의 삶의 궤적을 보자면 질주하는 경주마의 숨결이 느껴진다. 한시도 머물러 있지 못하는 삶.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성취해 내는 사람.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가온 가을 강’의 무렵을 실감했을 때, 작가 헤밍웨이는 자신의 화양연화를 더듬어 본다. 그리고 기억 어딘가에서 파리를 끄집어낸다. 누구에게든 스무 날의 젊은 시절은 가장 빛나고 치기어린 ‘벨 애포크’였겠지만 성공한 작가, 동시에 너무나 염속되어 버린 예술가에게, 가난했지만 날이 바짝 벼려 있던 습작의 시기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대상이다. 파리라는 공간은 헤밍웨이의 그 시절들이 박제되어 있는 곳이고.


베버의 공업 입지론은 예술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말은 제주로, 예술가는 파리로’의 기치라도 있는 양, 19세기의 예술가들은 파리의 몽마르트로 몰려들었다. 살롱전의 낙선자들, 화실을 뛰쳐나온 이들이 있는 곳으로, 물랑루즈에 진을 친, 압생트에 중독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도마 위에 오른 예술가를 두고 신사냐 별 볼일 없는 룸펜이냐를 운운하는 비평가들이 있는 곳으로.


예술가들의 도시에 입성한 20세기의 헤밍웨이는 늘 ‘허기’에 시달린다. 생계를 짊어진 가난한 가장으로서의 허기, 그리고 배가 고플수록 세잔의 그림이 더욱 명징하게 보이는 예술가로서의 허기. 아무리 위장을 튼실하게 할지언정 버스에서도, 집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마저도, 쏟아지는 달빛 속에서도 그를 불면에 시달리게 했던 것은 이 정신적 허기, 글쓰기에 대한 강박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허기를 메우기 위해 그는 닥치는 대로 써 내려갔고, 여행을 갔고, 술을 마셨고, 사랑을 하고, 전쟁터를 누볐다. 끊임없는 그의 갈증은 어쩌면 작가로서의 그를 일군 원동력이 된 셈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아무리 평생을 채워도 자신의 갈증이 결코 해갈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문득 멈추어 선 그에게 그의 삶을 이룬 또 하나의 결, 파리에서의 오래된 추억담이 해묵은 약속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가난하고 볼품없던 무명의 작가에게 늘 버팀목이 돼 주었던 실비아 비치의 서점, 죽 치고 앉아 되는 대로 써내려가던 라라 클로즐리 데릴라 카페, 도둑맞은 원고, 아쉬움을 머금은 채 등 돌린 경마장의 함성, 신선한 눈가루가 스치던 빙하 스키, 아내와 함께 기르던 장발, 그에게 행과 불행을 동시에 안겨준 포알베르크... 오만한 비평가 포드 매독스 포드, ‘그저 못생겼을 뿐인’ 자벌레 윈담 루이스, 찌질함의 극치 스콧 피츠제럴드, 독선적 스폰서 거트루드 스타인, 발표하지 않는 시를 쓰는 괴짜 시인 에반 쉬프만...

잘난 펜대의 권력으로 지인들의 위상을 여지없이 깎아 내리는 헤밍웨이의 뒷담화가 다소 거슬리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마저도 늙은 작가에겐 애정 어린 유머이자 그리움의 흔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스스로에게도 솔직했다. 하루하루가 축제처럼 느껴지던 시절, 어릿광대와도 같았던 자신을 담담하게 떠올리면서. 그리고 깨닫는다. 그때의 작은 균열이 자신을 얼마나 멀찍이 데려왔는지를. 누군가에겐 자신을 키운 팔 할이 ‘바람’이었듯, 파리의 추억은 작가 헤밍웨이의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리란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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