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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Oct 29. 2020

각자의 선물

걷는,사람-제주 올레 14코스

귤이 익어가는 10월 제주


가을 제주의 출발은 14코스. 저지 오름 앞에 서니 지난 봄 빗속의 13코스 생각이 문득 난다. 불과 4개월 전이어도 꽤 오래된 듯한 느낌. 느낌은 느낌일 뿐.


제주 올레는 지금 걷기 축제가 한창이다. 이 시국에 축제...? 예년에는 참가자 전체가 3일 동안 3개의 코스를 함께 걸었다면, 올해에는 23개의 각 코스에 15명 이하 사전 신청자들이 매일 걷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름하여 '따로같이'... 코로나 시국에도 축제가 사장되지 않게 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생각할수록 갈채를 보내고 싶다.


이번 축제엔 흥미로운 게 있다. 참가자들은 특정 코스에서 출발하되, 각자 신청한 기간에 맞춰 그 여정을 이어갈진대, 그러다 보면 처음 만난 팀 그대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동행이 되는 것이다. 물론 코스를 쭉 이어가기 어려운 사례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3일 이상을 동행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 여행자 그룹의 분위기가 형성될 것인데... 중간에 합류, 불연속적으로 걷게 된 나로서는 각 그룹의 분위기들이 괜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14코스는 숲길과 선인장 자생지를 지난다. '백년초'라고도 불리는 손바닥 선인장은 꼭대기 열매가 자줏빛으로 변하면 즙을 내어 약으로 소용된다.


상품이 되지 못한 하품의 귤들은 저렇게 버려진다. 겨울철엔 길거리에 그득그득 쌓아놓아 지나가다가 멀쩡한 애들을 주워 먹기도 했는데..


고기야 잡히건 말건.... 배짱 좋은 노인...과 바다


월령리의 바당길로 접어들기 전


자연 그대로의 방파제, 월령곶...


해녀들만 먹는 콩이 있더냐...


있었다. 해녀들이 먹었다던 해녀콩.


하지만 독이 들었다는 해녀콩은 옛날 해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먹은 콩이란다. 목숨을 건 낙태 시도다. 임신 후 뒤처리는 늘 여자들의 몫이다. 척박한 환경, 순탄치 못했을 해녀들의 삶이 쓰라리다.


별안간 경찰차들이 보인다 했더니....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던 차량을 단속하던 것. 제발 이따위로 살진 말자.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은 늘 옳다.


제주의 바람을 제대로 활용한 놀이가 한창이다. 금릉의 바다가 이젠 협재를 이겨 먹었다.


뜻밖의 쇼타임~ 일행은 귤을 까먹으며 눈호강을..


바닷가 용천수에 발을 넣으면 쏘옥~ 빨려들어간다. 끝도 모를 귀여운 늪이다.


기천만원을 들여 세웠다는, 협재리의 명물... 이 웅장한 구조물 앞에 입이 쩍 벌어져 뒤처진 사이, 후발 주자와 조우를...  14코스의 동행들은 그 면모가 다양하였다. 쭉 함께 걸어온 이들, 나처럼 하루살이 동행, 빨리 걷기의 달인, 빨리 걷기를 경멸하는 놀멍 쉬멍의 달인, 중간에 증발한 자, 출발 때는 없다가 끄트머리에 현신한 자, 바닷물에 텀벙 들어간 자들, 신발을 벗었다가 도로 신은 자, 절대로 신발 벗지 않은 자, 이들을 카메라에 잡은 자, 간식거리로 홀로 정자에 앉아 식사한 자, 나눠 먹으려고 간식 바리바리 싸왔다가 뒤처져 그들만의 식사를 끝낸 자들..... 하나 같이 선량한 이들이었으나 뭔가 불협화음의 극치였다고나 할까. 나 같은 모래알이 눈치챌 정도면?


비양도... 정올레는 늘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간다. 그리고 왼쪽 옆구리에 또다른 섬을 품고 가는 동안 섬 속의 섬, 아니 섬 밖의 섬은 동반이자 동경의 대상이 된다. 오른쪽의 동반은 잊었어도, 왼쪽의 동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였다. 우리는 각자 다른 시간에 그를 맞이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선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각자의 소득은 달라도, 함께 하기는 했던 거다.


그리고 나의 소득은 출발 지점에서 받았던 선물, 순한맛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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