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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Nov 01. 2020

경산의 명물, '삽사리'

시시한 이야기 ⑩ 정지용, ‘삽사리’

자장자장 우리아기 우리아기 잘도잔다. 마루밑에 삽살개야 멍멍멍멍 짖지말고....

우리님이 오시거든 개야개야 삽살개야 짖지마라 짖지마라.....     


늘상 면박만 당하던 삽살이도 지용의 시에선 비로소 그 위용이 살아난다. 그렇다. 더벅머리에 볼품없어 보였어도 그는 ‘천연기념물 368호’이자, ‘잡귀(액운) 쫓는 명견’이었던 것을.      


울타리도 튼튼하고, 사립문도 굳게 닫혔다. 덧문이며 미닫이도 꼭꼭 잠겼건만, 게다가 방안 촛불은 아직 꺼지지도 않았다. 눈 쌓인 길엔 인기척 하나 없다. 그런데도 삽사리는 무던히도 짖어댄다. 잔돌 사이로 흐르는 개울 물소리라도 새어들까, 하늘에 뜬 달이라도 내려설세라 그리도 짖어대는 것인가. 어린 아가라도 있었음 여지없이 면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난스런 삽사리의 행동을 십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대’의 밤을 지켜주고픈 시인이다. 어쩌면 삽사리의 과장된 행동은 ‘그대’의 집 앞을 서성이는 시인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삽사리의 행동은 시인에게 충분히 ‘그럴 만’하며, ‘괴임즉’하다. 든든하기 짝이 없던 것이다. ‘그대’는커녕, ‘그대’의 ‘것’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시인으로선 밤새 짖어대다 ‘그대’의 고운 신을 베고 자는 삽사리가 내심 부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렇다. 지용도 연시(戀詩)를 쓰긴 썼다. 헌데, 직접은 못 나서고 괜시리 댕댕이를 앞세웠다. 연시의 달인 만해에게 한수 배웠어야 할까. 하지만 지용의 것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선비스럽다고나 할까. 시인은 삽살개만도 못해지고, 삽살개는 유난스러운 동안 연모하는 '그대'는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날밤 그대의 밤을 지키든 삽사리 괴임즉도 하이 짙은 울 가시사립 굳이 닫히었거니 덧문이오 미닫이오 안의 또 촉불 고요히 돌아 환히 새우었거니 눈이 치로 싸힌 고삿길 인기척도 아니하였거니 무엇에 후젓허든 맘 못뇌히길래 그리 짖었드라니 어름알로 잔돌사이 뚫로라 죄죄대든 개올 물소리 긔여 들세라 큰봉을 돌아 둥그레 둥긋이 넘쳐오든 이윽달도 선뚯 나려 설세라 이저리 서대든것이러냐 삽사리 그리 굴음즉도 하이 내사 그대ㄹ새레 그대것엔들 다흘법도 하리 삽사리 짖다 이내 허울한 나릇 도사리고 그대 벗으신 곻은 신이마 위하며 자드니라.     


정지용, 삽사리, 백록담,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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