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⑦ 서정주, ‘꽃밭의 독백-사소단장’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그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이란 사족이 붙은 미당(未堂)의 시. 저자의 의도는 모르겠고, 그냥 내 맘대로 읽어 볼란다.
신선 수행을 떠났으니 세상사에는 염증을 느꼈을 터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들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노래는 개중 신선하기는 했다. 흥겨울 땐 흥겨운 대로 우울할 땐 우울한 대로,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세상사를 벗어나진 못했다. 세상 끝을 향해 말을 달려도, 땅끝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니 이미 맥이 끊어진 산돼지, 산새들이야 말해 뭐하나.
내가 닿을 수 없는, 나를 초월하여 먼 데까지 이른, 그야말로 나보다 잘난 것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의 호기심과 욕망과 도전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언가.
헌데, 앞마당에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어제 보았던 것이다. 아니, 어제 보았던 것은 엊저녁 이미 시들어 떨어졌다. 헌데, 오늘 아침 그 자리에 또 피어난다. 이것은 어제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무엇이 이들을 끊임없이 살아나게 하는가. 아침마다 개벽을 하는 너, 호기심을 자극하는 너,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너는 사라지고 문이 닫혀 버렸다. 내가 아무리 두드리고 애원해도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너는 또다시 개벽을 하듯 피어날 것이다. 벼락과 해일의 위협에도 말이다. 비밀을 알고 싶은 나는 그저 두드릴 뿐이다. 문을 열라고. 열어달라고.
오래오래 연명하사 타고난 시재(詩才)를 마음껏 펼친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버젓이 오른 인물.
시인과 그의 해타(咳唾)를 기어이 분리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선생님은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도려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주옥같은 글을 읽어주면 안된다고 했다.
시험 출제에서도 제외시켜야 한다고 했더랬다. (야호~)
하지만 시인이여, 교과서에서도 부디 오래오래 살아남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시가 하사하는 영예와 당신의 인격이 남긴 치욕을 기꺼이 감내하시길 바랍니다.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山)돼지, 매[鷹]로 잡은 산(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서정주, 꽃밭의 독백-사소단장, 신라초,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