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⑧ 정지용, ‘장수산1’
나무를 베면 쩌렁쩌렁 소리가 울린다고 하였던가. ‘벌목정정’이란 말이 실감날 것이다. 이왕이면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좋겠다. 아마도 골짜기를 울리고 메아리 소리마저 쩌렁쩌렁 들려올 것이다. 그 흔한 다람쥐 하나, 우는 산새 하나 없다. 너무나 고요에 찌든 나머지 그 고요가 뼈를 저리울 지경이다.
‘장수산1’은 빈 틈 없는 산문시처럼 보이면서도 틈이 많다. 지용은 의도적으로 여백을 길게 두었다. 벌목할 때마다 산 전체를 울리는 도끼 소리를 상상할 때,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올 법한 가정 속에서 깊은 산 고요는 두드러진다. 공간적 여백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유난히 밝은 달은 굳이 보름을 기다렸던 탓이다. 이번엔 깊은 산 속 하얀 눈 위를 걸음 걷는 달빛으로 인하여 그 여백이 시각적으로 부각된다.
(아마도 장기나 바둑이었을 내기에서) 여섯 판에 여섯 번을 모두 진 스님은 조찰히 웃고 올라갔다. 인간 내면의 여백이 느껴진다. 시인은 쏘~쿨한 사나이의 내공을 따르고 싶다. 시인의 내면은 이 고요한 산속에서, 아무도 흔들지 않았어도, 스스로 무던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 적막할수록 내면의 흔들림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버텨내야 한다. 흔들림은 없앨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저 버티고 견뎌내야 할 시인의 다짐이 느껴진다. 슬픔도 없고 꿈도 버릴 만큼 단단해지길 기원하면서. ‘장수산’은 그 웅장함 속에 공허함과 적막함, 번민, 그리고 인고의 다짐이 시어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쩌르렁’ 울림을 선사한다.
벌목정정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냄새를 줍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정지용, 장수산1, 문장,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