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큼하게 무엇인가 구워지는 향기가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습니다. 어느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지 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집 냄비에 단호박이 들러붙고 있네요. 오늘도 단호박, 감자, 달걀 같은 것들을 도시락으로 싸서 출근 준비를 합니다. 9월이 되니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침공기는 상쾌하고, 이부자리는 포근합니다.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 그리고 어느덧 가을이 다가옵니다. 기간제 근무가 이제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언제 올까 싶었던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버틸 수 있을까 간간히 생각하며 고단했던 겨울과 방학을 지나고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의 문턱까지 도달했습니다.
파란 하늘에 흩뿌려진 구름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맙니다. 동네 카페에서 향이 진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카페라테를 주문합니다. 친구들이 모여 있는 동네 카페에 얼굴만 비추고 커피는 테이크아웃을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던 아침의 일과가 때때로 그리웠는데 곧 다시 시작될 수다의 시간을 떠올리니 흐뭇해지네요.
설렘과 긴장이 가득했던 도서관 첫 방문을 떠올려봅니다.
출근 전 계약서를 쓰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낯선 도시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더군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열었습니다. 사무실로 가서 서류작성을 하고 나니 인수인계를 하고 가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낯선 공간에 던져졌습니다.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 같은 모습으로 1층 입구 어디쯤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는 찬바람이 들어옵니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사무실이 아니고 흔히 로비의 안내데스크 같은 곳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업무를 가르쳐주는 전임자에게 잠깐의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받았습니다. 도서관의 시스템은 많이 변했고, 사용프로그램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서가에서 책을 찾는 것, 청구기호 보기, 관련 용어들은 익숙했고,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사람을 응대하는 것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건너뛰어 주말부터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방학을 앞둔 주말의 도서관은 무서울만치 북적거렸습니다.
한 번 배운 것은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메모하고 동영상 촬영도 했지만 막상 이용자를 대면하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언제 노트를 뒤적거리겠습니까? 그냥 옆에 있는 선생님들한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도서관의 시스템은 제가 일하던 시절에서 많이 변했습니다. 서고에 있는 오래된 책에서 가끔 손으로 직접 작성하던 대출카드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유물이 되었네요. 저는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할 때 감응 기라는 기게에 책을 손으로 밀어 보안을 풀거나 설정을 했습니다. 요즘은 RFID라는 칩을 읽어주는 간편한 프로그램과, 세련된 기계가 도서관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킵니다. 조명이 켜진 넓은 서가에 책상과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것이 여느 카페 못지않습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생각하며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장소와 시간에 유동성이 있습니다. 첫 근무 무서는 어린이자료실이었습니다. 그것도 주말이었는데 가족 이용자가 북적거리는 날이지요. 분주하게 돌아가는 업무에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였지요. 아주 조금은 도망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쉬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월요일, 큰 부담감을 안고 출근했습니다. 근래에 시력이 많이 떨어져 모니터와 책을 번갈아 보며 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안경까지 맞추었지요. 굼뜨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저는 엉덩이가 가볍고, 빠릿빠릿한 사람이었으니 스스로 늘려지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근무라 겸손할 때로 겸손해진 저의 목소리와 태도는 스스로 생각해도 친절하고 상냥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가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나면서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추위와 함께 근무부서도 이동했습니다. 새로운 자료실에 새로운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계속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합니다. 요즘 사회의 구성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딸과 엄마가 함께 근무하는 모습입니다. 어린 선생님들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성숙한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항상 웃으면서 대해주는 사람, 간식을 권하기도 하고 도서관의 꿀팁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 점심은 어디에서 먹으면 좋은지 추천해주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친절한 마음들에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카페에서 바다 물결 사진 메모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곧 한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자연스럽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명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메모지에 문구를 적어 도서관으로 달려와 옆자리 선생님에게 전했습니다. 작은 애정의 표시를 모니터에 붙여 놓아주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느 날은 사물함에 커다란 바케트 빵이 있어서 깜짝 기쁨을 얻었습니다. 여고생처럼 메모에 몇 자 적어 서로 주고받으며 메모지가 너덜너덜 해 질 때까지 책 사이에 꽂아 놓고 보고 또 보았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행동반경과 각자의 생각, 성향과 취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말처럼 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관계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최선의 선의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또 해야 할 일이라 믿으며 도서관에서 나만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