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by 보라















요즘 공공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 많습니다. 밤에 문을 열면 밤에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지요. 제가 바로 그 시간에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1시에 출근해서 밤 10까지 근무합니다. 제가 출근하면 도서관은 이미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지요. 거기에 어떤 배우의 수상 소감처럼 숟가락만 올려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어주면 됩니다. 그 대신 기쁨으로 먹고, 잘 치우고 마지막 설거지까지가 저의 몫이지요.

어떤 땐 저녁내내 고요합니다. 어느 날은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마감 막바지까지 책을 대출하는 이용자가 있기도 합니다. 밤 9시 59분, 이제 컴퓨터를 꺼도 되겠구나 싶으면 헐레벌떡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급하게 빌릴 책이 있어서겠죠? 분주하더라도 신기하게 10시 정각이 되면 도서관은 어둠에 휩싸이고 문은 닫히게 됩니다. 출입문을 잠그고 ‘경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이 나오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옵니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밤의 향기가 마중 나와 있습니다. 무사히 하루를 마친 날은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우면 노곤하게 밀려드는 피로를 덥고 뒤척일새도 없이 잠이 듭니다. 이용자가 찾는 책이 이유없이 행방불명되거나, 응대가 미흡해 이용자를 불편하게 한 날은 잠이 들기전에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꿈까지 끌고 들어가기도합니다.


근무하다가 저녁 8시쯤 되면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럴때는 고요한 밤의 서가를 거닐어 봅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밤의 도서관]에서 '밤이 되면 소리가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이 더 높아간다.'고 말한 것 처럼 서가를 걷다보면 나의 영혼은 졸음과 잠든 상태의 사이 어디쯤에 머물며 생각속으로 빠져듭니다. 책상에 엎드린 사람,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사이로 책들이 살아나는 시간, 서가의 책꽂이에서 부스럭거리며 살아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도서관에 와서 상호대차로 가방에 넣어지고, 바구니에 던져지는 책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저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가서 어떤 여행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책들이 담아 온 도서관 밖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가득해지는 시간입니다.


반납되는 책들 사이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바깥의 이야기를 전해오는 것들입니다. 소중해 보이는 가족사진이 있기도 하고, 영화티켓, 대형마켓 회원카드 같은 것도 있는데요. 주로 책갈피가 많습니다. 여행중에 구입한 듯 보이는 여러 나라의 풍경이 담긴 책갈피를 보면 떠나고 싶은 바람이 간절해 집니다. 자석 책갈피, 꽃과 캘리그라피로 손수 만든듯 보이는 코팅된 책갈피,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책갈피가 있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손글씨로 쓴 선생님에 대한 감사글을 넣고, 코팅한 책갈피였는데요, 아무리 보아도 귀중해 보이는 것이라며 한 동료가 따로 곱게 포장해서 메모와 함께 책상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다른 책갈피도 버리지 않고 한동안 주인을 기다립니다. 이 책갈피는 특별히 따로 보관해 두었지요. 다들 이 책갈피를 언제 찾으러 올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다음날 학교선생님으로 짐작되는 분이 꼭 찾고 싶은 책갈피를 잃어버렸는데 찾을 수 있냐는 문의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에 찾으로 오셨지요. 보관해 둔 물건이 주인을 잘 찾아가는 것을 보면 참 뿌듯합니다.


가끔 책갈피를 꽂아 놓고 싶지 않아도 자국을 남기는 하루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지만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무료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좋은 공간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불만과 불평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건의사항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표현의 방법이 서로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저도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처음의 겸손함과 친절함이 색을 바래기도합니다. 그런 감정의 부딪힘이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잊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할 시간입니다. 그 날의 페이지는 이제 덮어 버리려고요. 아주 가끔은 펼쳐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기분보다는 그때의 깨달음을 기억하며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지는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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