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의 시편에 부쳐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2018,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중에서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나를 강타한 이 한 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었다. 8년 전, 견디는 방식의 일환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절박한 순간에 시가 왔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파고가 들이닥치던 시기였다. 감정에 떠밀려 적다 보면 시에 가까운 것이 나왔고, 생각을 밀고 가다 보면 (계통 없는) 잡문이 남았다. 어쩌다 시를 쓰다 보니 시가 더 궁금해졌고, 궁금증은 공부로 이어졌다. 시집을 읽고, 시론을 읽었다. 공부할수록 시는 알 수 없었고, 알면 알수록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모르는 영역은 갈수록 넓어졌고,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모르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침묵과 발화 사이를 오갔다. 시와 예술의 영역에서 이 명제는 힘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의 세계에 거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의 입구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문을 두드리는 하릴없는 몸짓이 곧 시 쓰기 또는 예술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에 동경과 회의를 동시에 품었다.
그리고 내린 잠정적 결론.
다르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다르게 말할 수 없다면 쓰지 않는다,라는 생각의 파장은 두 가지 양상을 가져왔다.
1. 쓰기의 측면 – 머뭇거림과 미루기. 두 자세가 강화되었다.
2. 읽기의 측면 – 홀로 있는 ‘다른’ 방식으로서의 시 읽기가 강화되었다.
# 페소아와 페소아들
베트남에 머물 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한국에서 공수해와 내키는 대로 펼쳐 조금씩 읽곤 했다. 페소아의 페르소나 중 하나인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 서술된 480여 편의 짧은 글들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으나 기이하게 끌리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 페소아는 끊임없이 자신의 분신들을 창조한 작가로 유명하다. 다양한 헤테로님(Heteronym, 이명異名)들로 증식된 '페소아들'. 그 페소아들에 둘러싸인 페소아.
페소아의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오리지널 페소아'의 시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페소아는 여지없이 이명 시인들을 창조했고, 그 중에서도 페소아 자신이 특별하게 여긴 세 명의 이명 시인들이 있었으니,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그리고 알바루 드 캄푸스가 그들이다.
페소아 전공자인 역자 김한민이 묶어 소개한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엔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편들이 실려 있다. (또 한 명의 이명 시인 알바루 드 캄푸스의 시는 역시 김한민이 엄선하고 엮은 또 다른 시집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에 실려 있다.)
각기 다른 캐릭터와 스타일로 정립된 이 가상의 페소아들 중 '알베르투 카에이루'라는 시인의 이름으로 소개된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을 읽어본다. 무려 88쪽에 걸쳐 진행되는 이 시편은 (일련 번호로 매겨진) 49개의 시로 이루어져 있고,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이 글 첫머리에 적은 세 줄의 시구(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는 49개 시들 중 첫 번째 시의 5연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반짝이며 다가온 '한 줄' 들은 이 시편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
- "유일한 신비는 신비에 대해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5번째 시 중)
- "본질은 볼 줄 아는 것, / 생각하지 않고 볼 줄 아는 것, / 볼 때 볼 줄 아는 것, / 그리고 볼 때 생각하지 않는 것 / 생각할 때 보지 않는 것." (24번째 시 중)
- "왜냐하면 사물들의 유일한 숨은 의미는 / 그것들에 아무런 숨은 의미도 없다는 것이니까. / (...) 사물들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존재를 지닌다. / 사물들의 유일한 숨은 의미는 사물들이다." (39번째 시 중)
- "나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 내가 느낀 것을 말하려 한다 / 말들이 생각에 기대게 하려 한다 / 말 쪽으로 난 생각의 복도가 필요 없도록." (46번째 시 중)
- "자연은 전체가 없는 부분들이다." (47번째 시 중)
# 홀로 있는 방식으로서의 시 읽기
홀로 있는 방식으로서 시 쓰는 것을 멈추는 동안에는 홀로 있는 방식으로서 시를 읽는다. 시에 기대어, 시를 핑계 삼아, 간신히 뭔가를 적을 때에는 그나마 덜 머뭇거리고 미루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페소아가 이명의 ‘페소아들’을 만든 것처럼, 시를 읽을 때 나의 다양한 ‘분신들’이 호명되기를 바란다. 현실 세계 속 지리멸렬한 방식으로 동일화된 ‘나’라(고 착각하)는 일관된 주체로서가 아니라, 시에 따라 여기저기 출몰하는 다양한 ‘-되기’의 주체로서 시를 읽기 바란다.
시를 읽고 ‘어떤 식으로든 전달될 무엇’을 감지하고 더듬는 과정이 비록 계통 없는 단상만 남길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