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렬 -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고성 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북천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 눈이 내려도
찾아가지 않고 멀리서 살아간다
아무리 비가 내려도 바다가 넘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바다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
나는 그 북천과 바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더는
멀어질 수 없을 때까지
나와 북천과 바다는 만날 수 없다
오늘도
그 만날 수 없음에 대해 한없이 생각하며 길을 간다
너무 오래된 것들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나의 영혼 속에 깊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다 말하지 못한 것들만 거울처럼 앞에 나타난다
-고형렬,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창비, 2020, ‘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지만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된 생각들.
멀고 오래된 것들은 눈물겹다. 비가 내려도 넘치지 않는 바다를 향해 편지를 써온 시간들. 쓸수록 더 멀어진다는 생각에 뒤척일 때마다 시계는 가끔씩 멈추곤 했다.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동안에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것은 병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패턴. 다정도 병이라면 무심도 병일까. 작가 은유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유유, 2017) 중에서
나는 어느 쪽인가. 쓰는 고통이 커서 안 쓴다고 볼 수도 없고, 안 쓰는 고통이 더 커서 쓴다고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무심(無心)’이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 쓰는 것,이라는 말에 힘을 내보려고 하지만, 정작 나를 쓰게 한 것은 오늘 우연히 마주친 시 한 편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찾아가지 않고 멀리서 살아간다”는 마음 앞에 나는 다시 편지를 부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움은 닿을 수 없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니까.
고통도 쾌락도 없이 ‘무심’의 상태에서 쓰고 싶다.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더는 멀어질 수 없을 때까지 멀어지는 것,에 미리 회의를 품지 않는 것. 지금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다 말하지 못한 것들만 거울처럼 나타나는 요즘엔 더더욱.
20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