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관광할 것인가 -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안다는 것.

이는 기호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되돌아갈 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호밖에 모른다.

따라서 기호를 여행하기 위해 현실을 여행한다.

복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원본을 알아간다.

강한 관계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약한 관계에 뛰어든다.

이 책은 그런 역설을 호소하기 위해 썼다.


-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북노마드, 2016, 166쪽




코로나 사태로 ‘방구석 XXX’(여행/콘서트/미술관/헬스장/영화관 등등)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검색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포털사이트의 틀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여기 “인터넷은 계급을 고정하는 도구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 일본 현대철학과 비평계를 대표하는 아즈마 히로키의 책 <약한 연결>이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 ‘철학이나 비평에 기본적으로 흥미 없는 독자를 상정하고 쓴 책’인 만큼 가볍고 쉽게 술술 읽히지만 분명 ‘생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책 사이즈도 작고 분량도 적어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타자가 규정한 세계 안에서 생각할 뿐이다. 그 통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로지 하나. 구글이 예측할 수 없는 말을 검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이 책의 답은 단순하다. ‘장소’를 바꿔라. 그뿐이다."


-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강한 인터넷과 약한 현실', 7쪽


그렇다면 약한 연결은 무엇인가. 미국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1970년대 제창한 ‘약한 유대관계 Weak Tie’라는 개념을 자신의 철학적 사유로 끌고 온 것. 알찬 삶을 위해서는 ‘강한 유대관계’와 ‘약한 유대관계’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강한 유대관계는 사람을 익숙한 공간에 고정시켜 그 가치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전형적인 인간이 양산된다. 약한 유대관계는 공동체 밖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뜻밖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약한 유대관계를 찾을 것인가? 바로 현실이다. 신체의 이동이고 여행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자기를 바꾸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꾸는(=이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광’이라는 흥미로운 콘셉트가 탄생한다. 여기 두 가지 인생론이 있다. 한 곳에 머물러 기존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체에서 성공하는 ‘마을 사람 유형’과,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경을 바꾸며 세계를 경험하고 성공하는 ‘나그네 유형’. 마을 사람은 한 곳에만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고, 나그네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나그네와 마을 사람 사이를 오가는 ‘왕복’의 의미로서 제3의 ‘관광객 유형’이라는 삶의 방식을 권유한다.


이 책의 주제는 인터넷 검색과 여행이다. 구글이 주는 검색어를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것, 환경이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에 정기적으로 노이즈 noise를 끼워 넣는 것의 필요성을 말한다. 이 책의 부제가 ‘검색어를 찾는 여행’인 이유다. 역자의 말처럼 “의식은 환경의 산물이고, 말도 환경의 산물이므로 동질한 자아의 자기증식에 안주할 게 아니라 타자성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말을 낳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장소를 바꿔야만 도출될 수 있는 검색어란 무엇인가. 그곳에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는 단어이다. 즉 ‘현실’을 필요로 한다. ‘자기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 검색어’를 찾기 위한 여행. 현지에 가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검색할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임을 잊지 말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노이즈로 여행을 하는 것. 자신의 검색어를 넓히는 경험으로서의 여행.


이 외에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법으로 ‘현지에 가보기’,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분투할 때 의도와 달리 발생하는 ‘배달 오류’의 의미, 새로운 말로 검색하고 싶다는 ‘검색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관광지화’, 여행지에서 만나야 할 대상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욕망’이라는 것 등의 논지가 쉽고 빠르게 읽힌다.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각자의 입장을 말로 표현하며 말 위에 말을 더해 가는 메타 게임을 멈추고, 한일 관계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민과 국민은 말을 매개로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지만 개인과 개인은 ‘연민’을 통해 ‘약한 연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에서 21세기 글로벌 사회의 희망을 읽는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 볼 만하다.


강한 유대관계는 계획성의 세계이고, 약한 유대관계는 우연성의 세계다. 이 ‘약함’이 강한 유대관계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보너스 트랙'으로 ‘관광객의 다섯 가지 마음가짐'을 말한다. 무책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연에 몸을 맡기며, 성공과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인터넷과 연결된 상태로 있되, 모국의 인간관계(소셜 네트워크)는 끊는 것. 인터넷을, 강한 유대관계를 더욱 강하게 하는 공간이 아닌, 약한 유대관계가 랜덤하게 발생하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만한 포인트이다.


최근 아즈마 히로키의 책 <관광객의 철학>(2020)이 출간되었다. <약한 연결>에서 제시한 ‘관광’이라는 흥미로운 컨셉을 좀더 철학적으로 밀고 나간 것처럼 보인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여행은커녕 집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 ‘관광객’ 컨셉은 조기 종영된 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다.(<약한 연결>은 일본에서 2015년에, <관광객의 철학>은 2017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유의 영역과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물리적 이동이 제한된 현재 (혹은 앞으로도 이어질 미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관광’할 것인가 하는 물음. 우리의 몸을 어떻게 미지의 환경에 둠으로써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하는 질문. 관광 외에도 어떻게 새로운 검색어를 찾고, 그 검색어로 현실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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