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x 0.7의 자세

자...... 이제부터 뭘 하지?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 S가 새 책을 냈다. <나이 드는 것도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이다. 몇 년 전부터 내가 품어왔던 말이기도 해서 익숙하고 반가웠다. 잡지 기자와 편집장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가 힘을 뺀 어조로 나이 드는 것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책이다.


웰빙(well-being)에서 웰다잉(well-dying)으로 시대적 관심이 넘어가는 길목에서 웰에이징(well-aging)이라는 화두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이듦'에 관한 책들도 부쩍 눈에 띄고, '잘 늙어가는 것'의 중요성이나 '좋은 어른'에 관한 논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언론인 김선주의 칼럼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 수록된 '나이 곱하기 0.7'이라는 글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말했다는 "요즘 사람의 나이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야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나이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당시 나이 60이었던 저자 김선주는 이 구절을 읽고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고 전한다. 60 곱하기 0.7은 42. 60세 여성이 스스로의 나이를 마흔두 살이라고 여긴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쉰 살이면 서른다섯, 마흔이면 스물여덟이다.


"에라 잘됐다. 0.7을 곱해서 서른다섯이라고 치면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한 우물만 파고 살기에는 지루하고 긴긴 인생이 됐다. 새로운 우물을 깊게 팔 수 있는 나이라 마음먹으면 된다."


- 김선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한겨레출판사(2010), 289~291쪽


2007년에 쓰인 칼럼이니 한참 지난 글이지만 시의성은 여전하다. 이미 '노년'에 관한 새로운 사고의 틀이 요구되던 시점을 잘 반영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현재 내 나이에 0.7을 곱하면 아직 30대 초반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결코 지칠 나이는 아니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골몰이 정점에 이르는 때인지도 모른다. 천진하기만 한 내 아들도 몸만 컸지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는 열두 살 초딩이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따위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르다.


박진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죽어도 좋아>(2002)는 70대 노인의 성(性)을 다루어 2000년대 초반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노인'이라는 말이 주는 막연한 통념이나 선입견 대신 연만한 두 남녀의 신체적 욕망을 짚어냈다는 것이 신선하고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동시대 화두나 담론에서 늘 배제되는 계층이었다. 설령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더라도 노인(으로 분류된)층이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주체로 나서기엔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절대적인 세대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노인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게 사회 주류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계층이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달라질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개인적 친분이 있던 한 심리학 교수는 앞으로 ‘노인 심리학’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당시엔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젊은이의 미래가 노인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나이가 들어서야 실감할 수 있다. 나이에 0.7을 곱해서 서른다섯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 서른다섯도 안 된 젊은 나는 이 귀한 체감을 바탕으로 무엇인들 못하랴 싶기도 한 것이다. 한 우물만 파고 살다가 새로운 우물을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우물을 '깊게' 팔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김선주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자, 마흔두 살이라...... 이제부터 뭘 하지......?"


영화 <죽어도 좋아>의 영어 제목은 <Too Young To Die>이다. 70~80대 노인이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로 간주되는 시대, 30~40대인 당신은 이제 자신에게 질문해도 좋겠다. 자...... 이제부터 뭘 하지?


(2021-2-22)

keyword
이전 01화무직은 명사, 백수는 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