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는 실존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기업체 사보 기자로 3년을 일했다. 책이나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어릴 적 소망은 이루어진 것도 같았다. 이후 오랫동안 외국기업에서 브랜드 홍보와 마케팅 일을 하며 카피 문구나 광고 기사, 보도 자료와 같은 상업적 글을 다루다가 요즘 말로 ‘현타(現time)’가 왔다. 현실 자각 타임이라 했던가. 내 글을 쓰고 싶다. 나름 괜찮은 직장에서 괜찮은 경력과 연봉, 괜찮은 지위와 평판을 쌓은 때였다. 아무개 씨에서 -과장, -차장, -부장으로 불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사회적 위치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누군가를 만나면 제일 먼저 명함부터 내밀고 상대방의 명함을 요구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명함에 적힌 직업과 타이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익숙했던 시절이지만 사회에서 만난 몇몇 소중한 관계는 명함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되기도 했다.
일로 만나 가까워진 K가 잘나가던 패션 잡지 편집장을 그만두고 쉴 때였다. K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계급장 떼고도 만나주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고맙지.”
현타가 온 이후 해외로 이주하면서 계급장을 잠시 내려놓았다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엔 완전히 떼게 되었다. 계급장 떼고도 만나주는 사람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직장에서 내 자리가 없어지는 꿈을 아직도 종종 꾸는 걸 보면 규정된 직업 타이틀의 부재가 가져오는 불안에 무의식적으로 시달리는 모양이다.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서 이런저런 실험 기간을 거쳐 또 다른 ‘현타’의 순간들을 경험했던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나는 아직 예전의 일이 고픈가?’ 아니면 ‘그럴듯한 사회적 포지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라는 생각들로 혼란스러웠다. ‘한때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라는 말을 앞세운 후 ‘지금은 무엇이 되었다’ 식의 전형적 수사를 늘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라던 ‘무엇’의 자리엔 작가,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평론가 등과 같은 동경의 단어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명함도 사회적 타이틀도 없는 긴 공백의 시간을, 나는 바라던 ‘무엇’ 대신 소위 백수로 살았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백수와 무직의 차이가 뭘까. 명쾌하고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무직은 명사고, 백수는 동사지.”
발법이로서의 직업을 가지지 못한 상태는 무직, 생계를 목표로 한 일이 아니더라도 몰두하거나 즐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속하는 작업이 있다면 그건 백수의 상태라는 뜻일 것이다. 무직은 수동태, 백수는 능동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공부하는 백수 예찬론자인 고미숙 선생에 힘입어, 고전을 공부하던 길진숙은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라는 책을 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생태학을 파고들다가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이끌었던 네 명의 길잡이 선배들(연암의 선배인 농암 김창협, 연암의 지기인 담헌 홍대용, 다산의 스승이며 선배였던 성호 이익과 혜환 이용휴)이 모두 다 백수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저자는 18세기 지성의 힘이 이 ‘백수 생태학’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돈과 명예와 직위와 사회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백수라는 실존’을 풍부한 사유와 문장의 시간으로 바꾼 ‘백수 지성’에 주목한 것이다.
백수라는 처지는 내가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침잠의 시간 동안, 우리들은 모두 출구를 묻고 길을 찾는다. 그러니 백수로 사는 때는 정념보다는 지성을 발휘해야 할 때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존재적 성찰에 직면하는 최적기, 그때가 바로 백수의 시절이다. (...) 농암, 성호, 혜환, 담헌은 백수를 선택할 때, 그리고 백수로 살면서 무수히 질문하고 고민했던 것이다. 백수의 시간을 인생 절정의 순간으로 만든 것은, 백수의 길이 당연하고 쉬웠기 때문이 아니다. 백수라는 현실에서 세상의 가치를 의심하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을 회의하며, 사회적 통념이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녕 원하는 삶의 기술이 무엇인지, 삶의 길이 어디인지를 찾는 지성의 작업에 전력투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백수라는 삶의 조건을 최대한 정직하게 직시하자 이들 안의 지성 DNA가 최선을 다해 응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길을 낼 수 있었다. 백수라서 다른 길을 낸 것이 아니라,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백수의 존재조건을 아주 잘 활용했기에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길진숙,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북드라망(2016), '에필로그' 309-310쪽
칼럼은 보통 각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쓴다. 만약 백수에도 전문가적 수준이 있다면 그에게도 칼럼을 쓸 자격이 주어질 수 있지 않을까. 백수가 하나의 화두가 된 세상이다. 글쓰기 플랫폼에 들어가 보면 백수를 자처한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로 살기’를 외치는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거쳐 스스로 백수가 된 이들이다. 타이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즐기는 일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흐름이 얼마간은 반갑다. 그렇다면 보통의 존재이자 충만한 백수를 지향하는 이들의 시선도 적으나마 공적 지면에 할애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은 너무 뻔뻔한 심사인가. 백수의 시대, 백수들이 사는 법이 더 많이 창안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백수로 사는 법을 연마하는 것이 새로운 삶의 기예가 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20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