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인도어에서 다시 아웃도어로

한때 아웃도어,라는 말이 넘쳐날 때가 있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산으로, 들로, 물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실내보다 바깥을 지향하는 트렌드 덕분에 ‘아웃도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의류 및 스포츠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꽤 오랜 기간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순식간에 ‘인도어(indoor)’가 ‘아웃도어(outdoor)’를 밀어내고 메인 키워드가 되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확실히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아웃도어 의류보다 인도어 의류가 대세이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실내에서 편하고 멋스럽게 입기 좋은 옷이 애슬레저(athleisure) 코드와 맞물려 온라인 시장을 잠식한다. 집(home)은 거의 모든 활동의 베이스 캠프가 된다. 홈밀, 홈트, 홈시어터, 홈카페, 홈스터디, 워크앳홈(work-at-home), 홈바, 심지어 홈캉스까지. 집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하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운동하고, 술 마시고, 심지어 호텔에 온 듯 인테리어를 꾸며놓고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집에서 즐기는 모든 것.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환경으로 가속화된 풍경이다. 코로나 사태로 ‘방구석 XXX(여행/콘서트/미술관/헬스장/영화관 등등)'라는 표현은 이제 친밀하기까지 하다.


문득 실내인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코로나로 인해 주로 실내에 머무는(은둔하는) 인간. 동시에 디지털 네트워크에 24시간 접속되어 있는 인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은둔’과 ‘약한 연결’의 개념을 생각해본다. 각각의 주제를 다룬 책 김홍중의 <은둔기계>와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을 다시 들추어보는 것이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키워드 1: 은둔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에서 매일 “거리(距離)의 생산”과 “간격의 조립”을 실천하고 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은둔기계>(2020)에서 “은둔기계는 거리(距離)를 새로운 삶의 원리로 삼는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은둔기계는 “은둔 속에서 노동하고, 생각하고, 산책하고, 읽고, 쓰고, 견디고, 저항하고, 소통하고, 창조하며 다른 무언가로 생성되어가는 이들”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어떤 경우 ‘연결하고’ 어떤 경우 ‘연결을 끊는’ 동물, 즉 은둔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초超연결사회의 참된 도덕성은 단절의 능력에서 발견된다. 얼마나 깊이, 진지하게, 창조적으로 끊어질 수 있는가? 끊어짐과 연결됨 사이에서 얼마나 생동감 있는 리듬을 설계할 수 있는가? 공동체의 우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은둔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 김홍중, <은둔기계>, 문학동네(2020), 55쪽


은둔을 “삶에 지친 사람의 고상한 판타지로 보지 말고 하나의 세계관, 감수성, 삶의 형식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은둔지는 발명될 수 있으며, 은둔지를 구축하는 능력이 참된 창조력이라고도 말한다. 바이러스라는 예상치 못한 외부적 요인으로 간헐적 은둔이 상시적 은둔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COVID-19는 은둔을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정립시켜”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은둔의 마음으로 새로운 연결을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할 때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 "공존은 삼엄한 거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키워드 2: 약한 연결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검색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포털사이트의 틀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일본 현대철학과 비평계를 대표하는 아즈마 히로키는 자신의 책 <약한 연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타자가 규정한 세계 안에서 생각할 뿐이다. 그 통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로지 하나. 구글이 예측할 수 없는 말을 검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이 책의 답은 단순하다. ‘장소’를 바꿔라. 그뿐이다."


-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강한 인터넷과 약한 현실', 7쪽


약한 연결은 무엇인가. 알찬 삶을 위해서는 ‘강한 유대관계’와 ‘약한 유대관계’가 모두 필요하다. 강한 유대관계는 사람을 익숙한 공간에 고정시켜 그 가치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전형적인 인간이 양산된다. 약한 유대관계는 공동체 밖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뜻밖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약한 유대관계를 찾을 것인가? 바로 현실이다. 신체의 이동이고 여행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자기를 바꾸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꾸는(=이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광’이라는 흥미로운 콘셉트가 탄생한다. 인터넷을, 강한 유대관계를 더욱 강하게 하는 공간이 아닌, 약한 유대관계가 랜덤하게 발생하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이 포인트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여행은커녕 집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 ‘관광’ 컨셉은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유의 영역과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물리적 이동이 제한된 현재 (혹은 앞으로도 이어질 미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관광’할 것인가 하는 물음. 우리의 몸을 어떻게 미지의 환경에 둠으로써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하는 질문. 관광 외에도 어떻게 새로운 검색어를 찾고, 그 검색어로 현실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실내인간’에게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키워드 3: 이력(hysteresis) 현상

영자 신문을 읽다가 '이력(hysteresis)’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이력은 고무줄과 달리 구겨진 종이처럼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 큰 충격의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 경제학자들이 물리학에서 ‘이력’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것. ‘이력’은 금속 물체에 강한 자기력을 가하면 물체의 극성이 영구적으로 바뀌는 현상.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력 현상은 충격 후 영구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영향을 뜻함. 코로나 팬데믹이 전형적인 사례. 코로나로 인한 수업 시간 감소와 학업 격차가 가져올 장기적 비용 즉 경제적 이력 현상을 지적. 예컨대 수업 시간 감소의 영향으로 (해당 시기 학교에 다닌) 학생의 평생 소득이 평균적으로 몇 퍼센트 낮아지는지 연구한 독일 사례. 코로나로 학업이 뒤처진 학생들은 기술, 직업, 수입의 격차를 평생 따라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 팬데믹이 끝나면 어떻게 학생들의 수업과 학업을 정상화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


- 출처: Jon Hilsenrath, The Wall Street Journal, Feb. 25, 2021 (2021-4-5, Korea JoongAng Daily에서 재인용)


“물질의 물리량이 현재의 물리적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아니하고, 이전부터 그 물질이 겪어 온 상태의 변화 과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현상”이라는 이력(履歷)의 사전적 의미가 얼추 잡힌다.


앞서 언급한 ‘은둔’과 ‘약한 연결’이 (단어 자체가 지닌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것에 반해, ‘이력 현상’은 보다 우려 섞인 전망을 담지한다.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라는 식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와 변형을 예감하고 있는 요즘, ‘겪어온 상태의 변화 과정에 따라 영구적으로(그리고 부정적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 그 무엇에 대한 모호한 불안감이 점차 구체적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모르는 사람들과 특정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며 공통의 지적/예술적 경험을 만드는 일이 이제는 사라질 것인가. 학교, 도서관, 극장, 미술관, 콘서트홀 같은 공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개별 인간의 고립과 단절, 분자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인가. 모임이나 데이트마저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속도는 얼마나 더 빨라질까. 우리는 점점 더 실내형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인도어(indoor)’라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실내의 갇힌 공간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공간에 형성되는 자기중심적이며 폐쇄적인(egozentrisch) 세계관을 포함하여 이르는 말. 여기에 심취될 때 이기주의적이며 자아도취적이고 자아중심적인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지배당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교회용어사전’ 중에서)


교회용어사전으로 뜨는 것이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인도어의 바깥마저 인도어가 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그렇지만 희망은 어디에나 있으니. 우리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싶다. 또 아는가. 아웃도어, 여행, 오프라인, 공유,와 같은 단어가 가까운 미래의 키워드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이 생각보다 더 앞당겨질지.


인도어,에서 아웃도어,로의 레트로 열풍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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