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생각 하나.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왜 현실을 바꾸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지쳐버린 걸 수도 있고, 어떤 깨달음을 나도 모르게 얻은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미래를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단지 지금, 바로 오늘 뭘 하면서 보낼지에 집중한다.
그러고 보니 꽤 시간이 많더라. 계획과 강박에 쓰는 시간이 줄어드니 주위를 돌아보고 대화 한마디를 더 하고, 방치했던 몸을 단련하고, 아이를 한번 더 안아주게 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말 못 하겠다. 가끔씩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마음이 은퇴해버린 느낌이랄까? 난 아직 30대인데.
그럴 때는 행복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난 잘 사고 있는 거라고, 내가 이대로 멈춰있어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만 조금 더 행복해질 뿐이라고. 강박에 시달리며 살기에는 세상엔 즐길 것이 너무나 많고 느껴야 할 것들이 널려있다고.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관계에 힘을 쏟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는 부분이 물론 있겠지. 그래서 그런 것도 신경 안 쓰려한다. 당장 강박이 되는 것이라면, 설령 그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일지라도 내 지금을 방해할 수 있으니.
돈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의 가난이 내게 체득시킨 절약이라는 강박. 이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벌면서 비교적 여유 있게 살지만 아직도 만 오천 원짜리 곰탕은 섣불리 먹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 전 음주운전 합의금으로 얻은 공돈 같은 7백만 원은 이런 생각에 부채질을 한다. 말로만 들어도 보통 큰돈이 아닌 7백만 원. 그것도 공돈이라니. 생각 같아선 평소에 못 사던 것을 사거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갈 법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 7백은 은행의 마이너스 잔고를 조금 줄였을 뿐.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니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한 느낌까지도 든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채워지고 나면 돈은 숫자다. 물론 여기서 기본적이란 말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누구에게는 삼시 세 끼의 쌀밥이 기본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한 달에 서너 번 호텔 마사지는 기본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식적이고 건강한 의식주를 넘어서는 욕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욕구일 확률이 다분하다. 주변 사람들, 매스미디어와 SNS가 만들어낸 허영의 욕구일 것이다. 물론 재정적으로 큰 타격이 없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허영의 욕구를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일을 하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가족을 멀리하는 등 진짜 행복을 희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