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에 대하여

냉소는 색이 없다

by 숙제강박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온 주제.
“어떤 감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어떤 감정이 가장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감정에 대해서는 모인 이들끼리 의견이 각기 달랐다. 심성이 가장 포용적인 어떤 친구는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답했으며, 평소 감상적인 다른 친구는 “그래도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세속적으로 평가 받는 나 같은 경우는 “결핍의 감정이 나와 삶을 앞으로 이끈다.”라고 답했다. 치열한 토론을 거쳤지만 결국 그 주제에 대한 답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각자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감정이 다르다는 사실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쓸모없는 감정에 대해서는 결국 답이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냉소’다.

냉소라는 감정만큼 장점이 하나도 없는 감정은 찾기 힘들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일컫는 분노나 슬픔, 슬픔이 장기화되고 침착된 우울, 질투 등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색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색이 있는 감정은 타인이 쉽게 그 감정을 알아챌 수 있다. 분노와 같은 것들은 색이 진하다는 점에서 타인은 쉽게 그것을 느끼고 거기에 대해 대응한다. 그 대응은 좋든 나쁘든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냉소는 뚜렷한 색을 갖지 못한다. 색을 갖지 않으려는 감정이나 태도가 냉소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냉소는 색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결국 냉소는 스스로 더 냉소적으로 발전된다. 냉소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지 못한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의 씨앗을 잘라버린다. 감정의 색을 드러내려고 다가오는 타인을 냉소라는 감정 하나로 바로 막아설 수 있다. 아니, 흘려보낼 수 있다. 냉소를 띄는 상대에게는 그 어떤 진지하고 탐구적인 태도도 그저 흩날리는 먼지일 뿐이다.

냉소는 주로 회의론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극단으로 잘못 몰아갔을 때 생긴다. 회의론자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다원주의적인 성향을 갖지만, 그 반대의 극단으로 치닫다 보면 세상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 평소 사물과 현상에 의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 걸리기 딱 좋은 병이다.

실제 8년간의 회사생활에서 내 가슴을 지배한 감정은 대부분이 냉소였다. 회사를 천박하고 의미 없는 곳으로 여기면서 나 자신이 더 교양 있고 고차원적인 존재가 된 것 같은 우월감에 휩싸였다. 그 결과로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상황들에 진심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는 감정은 후회와 미안함 뿐이다. 나는 더 교양 있고 고차원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회색 인간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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