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차를 타는 것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나는 지금 2004년식 그랜저xg를 타고 있다.

아버지가 타시던 차를 받은 것인데 받을 당시에도 꽤나 오래된 차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차를 8년 탔으니 이제는 흡사 은퇴를 훌쩍 넘은 말을 당근으로 살살 달래서 조심스럽게 타고 다니는 느낌이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이 늙은 말은 나와 여행했던 추억과 우리 가족에 대한 고마움으로 하루하루 힘을 쥐어 짜낸다. 사실 올해 들어서는 백화점 주차장과 스타벅스 DT점에서 시동을 멈추며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결정적으로 어제부터는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무려 한낮 최고 28도를 기록했는데 말이다. 창문을 열고 달릴 때는 그나마 나았지만 길이 꽉 막혀 한참 서있는 경우에는 고역이었다.


그랜저xg라고 하면 2000년대 초반 국산 고급차의 상징이었다. 당시 흔치 않았던 프레임리스 도어(차 문 상단의 프레임이 없는 형식)가 적용됐고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떨림 없는 고고한 승차감까지. 당시 좀 살았다 하던 친구들은 지금 내 차를 보며 당시 아버지 차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어느샌가 국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추격전만 한다 싶으면 꼭 뒤집어지고 폭발하는 차로 단골 등장한다. 너무 작은 차들만 터뜨릴 수는 없으니 적당히 고급스럽고 큰 차를 섞어야 하는데 제작비의 한계가 있으니 폐차 직전의 차를 갖다 쓰는 건가 싶기도 하다. 또 몇 년 전에는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오래된 차를 변형시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이벤트를 진행한답시고 그랜저xg를 반으로 뚝 자른 뒤 장식해놓기도 했다. 아내는 한동안 그 이벤트를 가지고 나를 놀려대며 내 차까지 ‘메모리즈(이벤트 이름)’라고 불렀더랬다.


오래된 차를 타는 것이 딱히 부끄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주차한 뒤 내릴 때는 덤덤한 척 표정을 짓지만 웬만하면 사람 없는 데서 주차하고 걸어간다. 2년에 한 번 하는 차량 정기검사에서는 ‘운행 부적격’이 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초조해진다. 작년에 받은 정기검사에서 겨우 배기가스 허용치를 통과하고, 2년 뒤에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거라는 경고를 들었다. 또 요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는데 아이까지 어린이집에서 무시당할까 싶어 모퉁이를 돌아 주차하고 집이 가까운 척 아이와 걸어서 등원한다.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게 많다.


반면에 편한 점도 있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게 걱정 없고, 아이의 자전거를 앞좌석에 대충 구겨 넣어도 시트가 더러워질까 염려하지도 않는다. 주차하다 주차장 턱에 뒤 범퍼 아래쪽을 긁어도, 공사장을 지나다 라바콘과 차가 닿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차가 상처가 났는지 안 났는지 내려서 살펴보지도 않는다. 작년 가을에는 해외여행 후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을 한 어떤 차량이 내 뒤 범퍼에 충돌했는데, 수리비만 대충 계산해 받고 차는 고치지도 않았다. 참으로 고군분투하는 늙은 말이다.


아내와 맥주 한 잔 하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뭐냐?” 나에게 그것은 단연코 1순위 집, 2순위 차다. 옷이나 시계, 전자기기 같은 건 별로 관심도 없다. 집은 2년 전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으니 그걸로 됐고, 이제 차를 사야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던 중이었다. 아내와 열심히 돈을 아껴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친구들이 하나 둘 새 차를 사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내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은 그래도 사놓으면 투자가치가 있는 재화인 반면, 차는 사는 순간 수백만 원이 감가 되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처럼 하루에 수십, 수백 번 들여다보며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끽해야 주말에 한두 번 이용하는 것으로 따지면 엄청난 감가율이다.


그런 내가 결국 어제 새 차를 계약했다. 처음 사는 차인만큼 엄청난 시간과 고민과 또 번복과 결심을 반복한 끝에 말이다. 원래 예상했던 예산 범위를 한참 벗어났지만, 8년 동안 참은 것에 대한 선물이려니 했다. 차를 사게 된 데에는 아내의 한 마디가 주효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서른네 살의 여름을 낡은 차 때문에 집에서만 보내기는 싫다는 거였다. 그동안 얼마나 참았을까, 그동안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차 싶어 그 길로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막상 사 보니 별 건 아니더라.


다음 주면 차가 인도될 테고 이제 내 낡은 그랜저는 폐차장으로 가서 사라질 거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에게 핸들을 넘겨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게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중고 판매도 수출도 어려운 연식이란다. 아내와 연애하며 드라이브했던 기억,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봤던 기억,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 나중에라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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