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의식하는 운동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몇 년 전,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지인이 있었다. 그가 그 얘기를 꺼낸 뒤 한참이 지나도록 시작을 못하고 있기에 언제 시작할 거냐 물었다. 그는 수영장에 가기 위해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기초체력을 높인 뒤 수영을 시작하려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의 벗은 몸이 남들에게 보여줄 상태가 아니며 헬스장에서 볼만한 몸을 만든 뒤 수영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을 먼저 해야 하다니. 그것도 남들에게 보이는 일 때문에 원치 않는 운동을 하다니. 기발하면서도 측은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인 개인의 특이한 성향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헬스를 시작한 나는 비슷한 상황을 헬스장에서 매일 겪는다. 생활체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의 유지’ 임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은 근육의 과시를 위한 전시장이 된다. 울룩불룩한 근육맨들은 절대 헬스장에서 주는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유니폼보다는 노출이 심한 옷을 선호한다. 나시는 옆구리 중간까지 깊게 파여있고 바지는 팬티에 가깝다.

근육맨들은 헬스장 안에서 마치 정글의 왕처럼 행동한다. 무거운 중량을 드는 것이 권력의 서열을 나타내는 척도인양 엄청난 무게를 들어내며 압력밥솥처럼 연신 취취 소리를 낸다. 심한 경우에는 “으아!”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밥솥이 밥을 한 번 완성하면 밥이 잘 되었는지 거울 앞에서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 과정을 힐끔힐끔 관찰한다.

근육맨들이 운동하는 시간은 사람이 몰리지 않는 오전 10시경이나 오후 3시경이다. 그 시간에 헬스장을 간다면 쭈구리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나 샤워할 때, 운동할 때 모두 마찬가지다. 근육맨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온 정신을 내 몸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의 비교 대상은 저들이 아니다, 나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을 비교한다, 라며 되뇌어야 한다. 운동 자체도 힘든데 근육 전시장에서 정신까지 붙들고 있으려면 힘에 부친다.

그게 싫다면 직장인들이 살기 위해 운동하는 시간, 퇴근 후 저녁 시간을 노려야 한다. 왕이 떠나고 초식동물들만이 남은 평화로운 시간. 평화롭지만 개체는 더 많기 때문에 기구 차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근육맨들에 비해 운동 중간중간 더 힐끔거린다. 자신보다 못한 몸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어 안도한다. ‘내가 저 사람보단 가슴 근육은 낫군, 어깨는 내가 좀 더 넓은 것 같은데.’ 결국 초식동물들도 경쟁에 익숙한 야생동물일 뿐이다. 정호승 시인이 말했던 ‘고단한 전시적 인생’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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