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의 삶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건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여긴다.
또한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려 애쓴다.
이것은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하며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죽음을 가까이 놓은 채 사는 삶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특히 힘들고 지루한 일을 하게 되는 때에 더 그렇다.
죽음이 가까웠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힘들고 지루한 일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사람도 억지로 만나지 못하고, 대신 홀로 있거나 가족들과 보내는 조용한 시간을 즐긴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누군가와 술을 기울인 날은 그 시간에 차라리 할 수 있었던 다른 일의 목록을 떠올리며 자책한다.
자책하는 시간조차 짧은 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그렇다고 장기적인 꿈이나 목표가 없지는 않다.
인생을 짧다고 여기기 때문에 인류에, 사회에, 지인들에게, 나 스스로에게 의미 하나쯤은 남기고 가야 하지 않은가 싶은 마음으로 오히려 조급하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목표가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앞에 와있을지 모르는 죽음을 헛되고 의미 없게 만드는 대신 짧고 의미 있었던 생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결국 죽음을 곁에 두는 행위는 삶을 의미 있게 꾸미려는 노력의 마중물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말했다.
“의연하고 평온하게 사는 법을 알았다면 그렇게 죽는 법도 알 것이다.”
죽음과 삶은 같은 얼굴을 한다.
죽음과 삶은 원인과 결과이자 결과와 원인이다.
또한 시간의 선후관계이며 손쉽게 뒤집을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삶을 디뎌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