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싱어송라이터가 예능에 출연해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우울함이 밀려오는 어느 밤이면 우울함으로 인해 번뜩일 자신의 창조적 감성이 한편으로는 기대된다고, 그래서 그런 우울한 밤이면 우울함이 조금 더 밀려와 자신을 잠식해버리길 기도한단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지만 싸이월드라는 나만의 일기장에 감성이 철철 넘치는 글을 써내려가던 20대의 시절이 있었다. 캐나다 동부의 퀘벡이라는 도시에서 공부하던 1년 간의 시기였는데, 학교에서 함께 유학 보내준 별로 친하지 않은 세 명의 한국인 외에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당시 퀘벡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1명이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고국에 대한 향수병을 키우기엔 최적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1년 중 절반은 겨울의 날씨, 겨울이 되면 눈이 2층 높이까지 쌓이기 때문에 학교의 모든 건물은 개미굴처럼 지하로 연결돼 있다. 왜 북유럽 사람들이 우울증 약을 달고사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당시 나는 넘치는 혼자만의 시간과 향수병의 콜라보로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혼자만 볼 수 있는 게시판에다가 감정을 글로 쏟아냈다. 눈쌓인 창 밖을 바라보며 기숙사 책상 앞에 앉으면 굳이 개요를 짜거나 흐름을 고민하지 않아도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외로움의 깊이가 깊어지는 만큼 글감은 넘쳐났다. 에세이부터 소설, 편지, 시까지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글이 완성되면 남은 감정을 풀어내려고 학교 음대 건물로 향했다. 1인 피아노 연습실에 앉아 한두 시간 피아노를 치면서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우울이 담긴 그릇은 한 번 커지면 좀처럼 다시 줄어들지 않는다. 행복한 생각으로 우울을 퍼내려고 해도 그릇에는 언제나 일정한 양의 우울이 담겨있다. 이제 우울은 내 감정을 이루는 기본 원소다. 하지만 지금의 우울은 처음 나를 찾아왔던 퀘벡에서의 강력한 모습이 아니다. 조금 더 색이 옅어지고 점도가 낮아진 느낌으로 깊숙히 스며들어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기쁨을 온전히 기쁨으로 누리지 못하고 우울이 덜한 상태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감정에 대한 말과 글을 아낀다.
감정에 대한 말과 글을 아끼게 된 것은 “깝친다.”, “오그라든다.”, ‘중2병’, ‘이불킥’ 등의 단어가 생겨난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면 부끄러워 마땅할 일로 치부된 듯하다. 중세를 넘어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타임워프라도 한 느낌이다. 모두가 놀랄만큼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어떤 문제에 감정적으로 깊이 관여해 목소리를 내거나 공감의 표현를 하는 행위를 가지고 쿨해지라고들 말한다. 센치함은 죄가 된다.
10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내 말과 글은 싸이월드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무미건조하다.
하지만 그 때 글들을 보며 이불킥은 하지 않으려 한다. 자세히 보면 꽤 귀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