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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Dec 05. 2020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하여

 나는 어렸을 때 가끔 개를 주워오곤 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본의 아니게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두 번은 교회를 가는 길에 개를 주웠다. 물론 실제로 버려진 동물을 집에 데려온 적은 훨씬 더 많았지만 저 두 번의 경험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오래된 일임에도 기억에 남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 번은 학교가 끝난 뒤 동네 놀이터에 갔는데 아는 남자애가 품에 작은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주위로 애들이 몰려들었다. 개를 안고 있던 그 애는 개를 집에 데려가 키워줄 친구를 찾는다고 했다. 그 애는 개 주인이 아니었다. 그 아이도 어디선가 개를 데려온 거다. 동네 아이들은 안타까워하며 개를 계속 쓰다듬었다. 인식표도 목줄도 없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 냉큼 내가 데려가 키우겠다고 했다. 개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집 앞 계단으로 가 앉아서 일하러 간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부모님이 오면 개를 키우겠다고 하고 허락을 받아야지. 하염없이 앉아 기다렸다. 개를 안고 있는 팔은 저려오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어느새 노을이 졌다.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허락 없이 함부로 집에 개를 들이면 혼날 것이 분명했다. 찬 바닥에 가만히 앉아 바람만 맞고 있으니 살짝 쌀쌀했다. 엉덩이가 차갑다. 코를 훌쩍거렸다.


 나는 조금이라도 부모님을 더 빨리 만나고 싶어서 집 앞 계단에서 더 큰 길가에 있는 건물의 계단에 옮겨 앉았다. 조금 뒤 내 옆으로 사람이 계단을 오르며 지나갔다.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때였다. 너는 누구니? 왜 여기 앉아있어? 계단을 오르던 아주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쳐다보며 말했다. 이 개는 버려진 개인데 내가 데려가서 키우려고요. 그런데 엄마 아빠 허락을 받아야 돼서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주머니는 말했다. 그러니? 진짜 네가 키우려고? 네. 나는 대답했고 아주머니는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 다시 정면을 보고 앉아 품 안의 온기를 느끼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방금 그 아주머니가 다시 집에서 나와 내게 오셨다. 한 손에 밥그릇을 들고 있는 채였다. 그릇 안엔 개 사료가 한 줌 담겨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엄마 아빠가 집에 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품 안의 강아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나 강아지 키울래요. 부모님은 잠시 당황해했지만 곧 단호하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 집은 지금 개를 키울 형편도 안 되고 더군다나 그 개는 길에 버려진 개라서 어떤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너 맨손으로 그 개 만졌니? 얼른 내려놓고 집에 들어가서 손 씻어. 싫다고 버티자 부모님은 나를 살살 어르고 달랬다. 네가 강아지를 좋아하니 다음에 새 강아지를 사준다고 했다. 그러니 그 개는 다시 있던 곳에 두고 오랬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침내 개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더 버텨봤자 결국 개를 데려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몇 년 뒤 일요일 아침 예배를 드리러 집에서 막 나와 교회로 가던 길이었다. 길에 쓰레기 더미를 어슬렁거리는 개가 있었다. 몹시 배가 고파보였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고민하다 근처 슈퍼에서 작은 천하장사 소세지를 하나 샀다. 그리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껍질을 까 들이밀었다. 개는 내 손 한번 물지 않고 맛있게 받아먹었다. 하나를 금세 뚝딱 해치우자 뭔가 아쉬웠다. 슈퍼에 돌아가서 남은 동전을 모두 털어 소세지를 하나 더 샀다. 다시 주니 잘 받아먹는다. 이제 됐다 생각하고 다시 교회에 가려는데 내게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 개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두 번이나 슈퍼에 다녀오는 동안 시간은 지체된 상태였다. 일찍 나왔으니 망정이지 여기서 더 꾸물거리다간 정말 예배 시간에 늦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쩔쩔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은 급하고 발은 동동 구르는데 움직이면 개는 따라오고 저리 가라고 손을 저어도 개는 내 뒤를 쫓았다. 일단 교회에는 가야겠는데, 얘는 어떻게 해야 되지? …에라 모르겠다! 덥석 그 개를 안았다. 저번보다 조금 큰 강아지였다. 낑낑거리며 길을 한참 걷다 보니 드디어 교회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 앞에 전도사님이 서 계시다 나를 보곤 얼른 달려오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갑자기 울음부터 터뜨렸다. 그냥 울면서 강아지가 불쌍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다 더듬더듬 방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전도사님은 당황해하셨지만 예배가 시작되었으니 들어가 보라고 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개를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가라고 나를 달랬다. 나는 고민하다 예배실로 들어갔다. 예배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초등부 선생님은 내가 자리에 앉자 얼굴을 힐끔 보고 다시 예배에 집중하셨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예배실에서 거의 다 나간 때였다.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불러다 앉혔다.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고 했다. 개가 버려진 일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앞으로 개를 주워오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물었다.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교회 사람들은 다들 천사같이 착한 사람들이니까 분명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개를 주워오지 말라고 했다. 개가 불쌍하다고 한 마리 두 마리 집으로 데려오다 보면 끝이 없다고 했다. 세상에 버려진 모든 개들을 내가 다 데려와 키울 수는 없지 않겠냐고 그랬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버려진 개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쓰럽겠지만 그냥 보고 지나치렴. 개를 주우면 안 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정말로 벼락 맞은 것 같았다. 큰 충격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선생님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예배실에서 나오자 입구에는 여전히 전도사님이 서 계셨다. 전도사님은 다른 일도 못하고 계속 밖에 서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개를 지키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 두 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다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개를 안고 교회를 나와 근처 동물병원과 온 동네를 다 돌았다. 피리 부는 소녀처럼 교회 아이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주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찾아간 동물병원에서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어린 손님을 맞았다. 주인 없는 개는 병원에서 일주일간 맡아줄 순 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면 시설로 보내져 결국 안락사당할 것이라고 했다. 말하는 얼굴이 서로 귀찮은 일 만들지 말자는 것 같았다. 개를 데리고 병원을 나왔다. 계속 돌아다녀봤지만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어떡하지. 낭패였다. 그럼 내가 키울게. 우리 집에 데려갈게. 결국 나를 따라다니던 아이들 중에 한 명이 개의 가족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사건은 종결됐다. 후에 가끔 개를 보러 그 애 집에 놀러 갔다. 몇 년 후에도 그 개를 여전히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운이 좋았다. 어찌 보면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기점으로 더 이상 개를 줍지 않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의 무게를.


 나는 지나가는 평범한 소시민 1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몫만큼만 하면 된다.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순간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한동안 절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열세 살 이후부터는 교회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무신론자이다. 신의 부재를 너무나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스스로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단 개뿐만 아니라 버려진 모든 것들을 보면 나는 괴로워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으니까. 남을 도우려면 나부터 강해져야 했다. 그런데 나는 유리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유연하지 못하고 작은 충격에도 잘 깨졌다. 아예 박살 나기도 했다. 스스로를 지킬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이라는 책의 한 구절처럼, 나는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아무것도 버리고 버림받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버려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평생을 할애해도 다 줍지 못할 만큼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 버려져 무정하게 죽어가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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