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형님, 아 성준이 결혼 전에 사근사근한 며느리 들어온다고 만나기만 하면 그리 자랑을 하셨지 않소? 결혼하면 딸자식 같이 해줄 거라며..."
뚜뚜-뚜뚜-
"오마나 우리 며.느.리.한테 전화 들어오네~ 이만 끊을게. 동서"
최여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랑스럽게 수신 전화를 받았다.
"응. 그래. 웬일이니?"
"네? 어머님이 전화하셨는데 제가 못 받아서 다시 드린 건데요?"
"아, 그렇지. 그래 잘 지내지?"
"네. 그런데 왜 전화하셨어요?"
예전엔 사근사근한 줄 알았던 성준의 처. 말이 빼족하다. 요새 애들은 다 저런가?
아파트 앞에서 본 여학생들이 지껄이는 말들이 생각난다.
"아니 뭐 그냥. 성준이랑 잘 지내나 궁금해서..."
"어머님, 그럼 별 거 없으신 거죠? 제가 바빠서요.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나중에 성준 씨한테 물어보세요. 끊을게요."
달칵.
새 며느리는 항상 통화 끝에 궁금한 게 있으면 아들한테 물어보라고를 덧붙인다.
최여사는 90년대생 며느리들이 온다라는 책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분명 결혼 전에 성준이가 데려왔을 때는 그녀의 똑 부러지고 싹싹한 점이 좋았다.
딸이 없고 아들이 둘 있는 최여사는 겨우 50대지만 나이보다 옛날 사람이었다.
최 씨는 장남과 결혼하여 그 집안의 첫아들을 낳았다.
시모는 너무 기뻐하며 둘째도 아들이길 바랬다. 최 씨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시모는 이름까지 지어놨다. 첫째인 성준의 마지막 자를 돌림 하여 혁준이라고. 성준과 혁준. 그렇게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최 씨는 맏며느리로서 아들 낳은 부심이 대단했다. 먼저 첫 손주를 안겼지만 연달아 딸만 셋을 낳은 동서는 시모를 볼 때마다 쭈구리로 살아왔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동서의 카톡 사진을 보면 세 딸과 세 사위가 동서네 부부와 옷까지 맞춰 입고 아이들은 또 몇 명인지 모두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올려놓는데 매번 배경이 다르다.
최여사는 그걸 또 찾아본다.
"무슨 운동선수팀인가? 옷까지 똑같에 가지고 참..."
"왜. 당신 부러워?"
"이이가. 뭐가 부러워. 지난번 미정(동서네 셋째딸)이 결혼식에도 여자 셋이 한복을 세트로 맞춰 입어서 무서웠잖아. 얼굴도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도플갱언가. 그 집 사위들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지 부모한테는 신경이나 쓰는지 원..."
"그런데 왜 자꾸 사진은 찾아봐?"
남편이 최여사의 허를 찌르더니 아차 싶었는지 말을 돌린다.
"성준이 결혼식이 한 달 남았지? 곧 우리도 새 식구가 들어오네."
"그르게. 식구란 말 참 좋다. 정감 있고. 나도 이제 딸 있는 여자인가?"
"당신 의외로 옛날 사람이야. 요새 누가 며느리 보고 딸 타령 해. 어차피 지들끼리 사는 거지."
"아이고 당신이야 말로. 맘대로 하셔요~ 난 며느리랑 잘 지내볼 거니까!"
변화된 세상에서 아들 둘 엄마라는 건 불쌍한 엄마 1순위였다.
노친네들이 그렇게 아들 타령을 하다가 젊은 엄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지나가면 불쌍한 눈빛으로 한마디 하려 한다. 그들이 뭐라 하건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게 상책이다. 그 자리에 최여사가 있었다면 프로 참견러 노친네들을 한 방에 끝장냈을 것이다.
최여사에겐 아들 둘이 잘 맞았다. 성격이 무딘 편이나 화통하여 아들과 궁합이 잘 맞았다. 물론 아이들이 사춘기 때는 반항적인 행동들 때문에 잘 지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믿어주니 어찌어찌 지나갔다. 대학을 가니 서울이 멀어서 불편하다며 자취생활을 시작했고 취업준비로 방학에도 잘 내려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두 놈 다 무사히 군대까지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여 취업에 성공해 잘 살고 있다. 한시름 놓은 최여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전화가 자주 없는 애들을 생각하면 가끔씩 가슴 한구석이 시렸다.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평일에는 회사일에 바쁜 것 같고 주말에는 자고 있을 것 같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앞 집 소영이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아들은 결혼하고 효자 된다는 소리 있잖아요. 진짜라니까 남자들이 뒤늦게 철드는 거 언니두 남편 보면 알 꺼 아니에요."
"에이그 괜한 소리~"
말은 그리했지만 결혼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최여사는 미래의 며느리들을 아주 예뻐해 줄 거라고 종종 생각했다. 자신의 시모와는 달리 딸을 낳든지 아들을 낳든지 전혀 상관 안 하고 말이다.
이제 성준이 처가 며느리로 들어온 지 세 달이 조금 넘었다. 신혼여행에서 연락 한 통 없어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남다른 시어머니니까. 성준이네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인사하러 왔을 때 최여사는 나는 우리 며느리를 내 딸같이 대할 거라며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선언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만났다 하면 종종 그 뜻을 내비쳤다.
그러다 며칠 전, 성준이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아니, 이 시간에 아들이 웬일이야?"
"엄마, 잘 계셨죠? 어디 안 아프시고?"
"아유. 그럼. 너도 잘 지내지?"
"다른 게 아니라... 엄마 있잖아. 민정이한테 그 딸 소리 안 하면 안될까요?"
"무슨 소리?"
"너를 딸 같이 생각한다. 뭐 그런 거요."
"아니, 그게 뭐 어때서!? 예쁘니까 하는 소리지. 그래, 너 말 나온 김에 얘기 좀 하자. 민정이가 뭐 라디? 그렇다고 걔가 결혼하고 뭐 한 거 있니? 안부 전화를 제대로 하니? 우리 식구가 되었으면 식구답게..."
"아, 엄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우리 엄마 원래 쿨한 엄마잖아. 웬 식구? 민정이 엄마, 아빠가 식구지. 민정이는 그 집 딸이고..."
"됐다! 끊자!"
뚝.
최여사의 가슴속에서 누군가 불방망이질을 한다. 이런 개놈의 자식. 내가 너를 어떻게... 썩을 놈...
최여사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 며칠 후.
오늘 아침 며느리 민정이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고 민정이가 다시 전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며느리에게 들은 말이 할 말이 있으면 아들한테 하라고 하니...
최여사는 오늘까지도 뜨거운 감정이 차올라 어찌할 줄 몰랐다.
해가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배도 고프지 않고 기운도 없어 거실 소파에 누웠다.
남편에게도 대충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딩동. 딩동.
"엄마, 나야..."
큰 아들 성준의 목소리다.
"아이고 어떻게 여길 다 왔어!"
"엄마... 지난 번에 화나게해서 죄송해요."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최여사의 가슴속 방망이는 온데간데없다.
"알았다. 전화로 하지 먼 거리를 뭐하러 왔어~"
"겨우 한 시간 거리인데 뭘. 좋은 소식이 있어요. 내가 민정이한테 너 딸 노릇 좀 하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래?"
"딸 같은 며느리 원했잖아요. 마침 이번 주에 민정이가 이 근처로 출장이거든. 여기서 지내면서 우리 부모님께 딸 같이 해달라고 말했더니 흔쾌히 허락하더라. 그래서같이 왔어요. 좀 이따 올라올 거야."
이게 웬일인가? 최여사는 눈이 동그래졌다. 상황 파악 후 마음이 들떴다.
이번이 기회야.
최여사는 민정이한테 내 자식같이 해줄 거라고 결심했다. 앞 집 소영이 엄마한테도 우리 며느리 자랑 좀 해야지. 동서한테도 전화해야겠군.
"어머님~ 저 왔어요!"
마침 민정이가 들어왔다.
"응 그래 성준이한테 얘기 들었다. 아~ 저녁은 먹었니?"
"아니요."
"그럼 같이 먹으면 되겠네."
성준이가 회사에서 연락이 와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갔지만 며느리랑 함께 지낼 기대로 섭섭하지 않았다.
"저, 여기 있을 동안 엄마라고 해도 돼요?"
"아유. 그럼 당연하지~호호~"
"엄마, 그럼 나 밥 줘~"
"알겠어요. 따님~"
최여사는 이 역할극에 처음부터 몰입하고 말았다.
밥을 먹고 나서도 며느리는 부엌 근처도 못 오게 했다. 설거지까지 마친 후 스스로 내가 얼마나 좋은 시어머니인지를 다시 한번 새기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최여사는 오랜만에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지었다. 민정은 어제 내려오느라 피곤했는지 곤히 자고 있어 깨우지 않았다.
8시쯤 되니 시간이 늦은 거 같아 민정을 깨웠다.
"민정아. 일어나. 아침밥 차려놨다."
"아 뭐야 엄마 지금 깨우면 어떡해!"
"아니, 밥 먹으라고..."
"나 아침에 밥 안 먹잖아. 샐러드 없어?"
"무슨 샐러드..."
"아, 됐어! 아우 짜증 나.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씻고 대충 챙기더니 며느리딸은 출근했다.
최여사는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은 실실 웃으며 아침밥을 먹고 있다.
"여보, 봤지 봤지?"
"뭘..."
"아니, 쟤(며느리) 말 뽄새 말이야."
남편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출근했다. 최여사는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서 있었다. 마트에서 샐러드를 사며 생각했다.
도대체가...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딸이 잤던 방을 치웠다.
트렁크 가방에서 나온 옷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화장품은 뚜껑도 닫지 않았다. 정리하지 않고는 청소기 조차 돌릴 수가 없었기에 대충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때가 되어 민정이 돌아왔다.
"엄마, 나 왔어."
민정은 오자마자 손도 씻지도 않고 소파에 눕더니 핸드폰을 한다.
"아 배고파, 저녁 언제 돼?"
최여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질 않았다.
며느리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더니 국이 짜네. 소금 좀 덜 넣어야겠다고 그러더니 이렇게 먹어서 살이 찌는거라고 말했다. 최여사의 배를 보고 운동 좀 하라며 요새 아줌마들 다 날씬하다고 일침을 가한다. 정리된 방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자기 물건이 없어졌다고 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방을 치웠냐며 적반하장이다.
그 모든 걸 듣고도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자동으로 설거지하는 자신을 보며 계속 이 상황이 납득이 안되었다.
그때 남편이 퇴근했다.
며느리딸이 남편을 보자마자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린다.
"아빠아빠 나 진짜 사고 싶은 구두 있는데 손 떨려서 결제 못하고 있잖아."
"얼만데?"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며느리딸에게 묻는다.
"비싼데... 50만 원 좀 안 돼... 딱 하나 남았어. 이건 디자이너 브랜드라 다른 나라에서도 못 구한다고"
최여사는 너 미쳤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까처럼 입이 안 벌어졌다.
그런지도 모르고 남편은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사고 싶으면 사야지. 자, 아빠 핸드폰 줄테니까 사이트에 들어가서 어서 결제해."
"할부는 어떻게 할까?"
"싸나이는 일시불!"
"우왕 우리 아빠 최고!"
민정은 남편을 껴안았다.
이쯤 되니 다들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다. 며느리랑 저렇게 껴안는 시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최여사는 민정이보다 남편에게 더 분노가 치밀었다. 며느리년이 시 에미를 종년 취급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며느리랑 짝짜꿍이라니!
"다들 당 장 그 만 둬!!"
드디어 최여사의 목소리가 어렵게 터져 나왔다.
"여보... 일어나 봐... 뭘 그만둬?"
"으으.."
최여사는 신음 소리를 냈다.
눈을 뜨니 천장이었다.
"아들한테 전화 왔다니까. 당신이 잠깐 잠든 것 같다고 하니까 깨면 전화해 달래."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던 최여사는 숨을 몰아쉬었다.
휘유...
정말 다행이야.
돌아온 현실감에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무슨 일 있니?"
"엄마, 지난번에 죄송했어요. 민정이한테도 잘 얘기해볼게."
"뭘...?"
"엄마가 아들만 둘인데 아들들이 잘 못해서 자꾸 딸 소리 하시는 거라고 엄마 좀 이해해달라고 말이야. 같이 만날 때 만이라도 딸 같이 노력해 줄 수 있냐고. 나도 처가댁에 아들같이..."
"아니다! 아니야!"
"네?"
"딸 같은 며느리 절대 할 필요 없다. 나는 우리 아들만 있으면 된다. 너도 민정이도 부담 갖지 말고 양가에 하면 된다. 응? 너네만 잘 살면 돼. 엄마가 궁금한 거 있으면 너한테 전화하면 되는 거지. 엄마도 다시는 그런 말 안 하겠다고 약속 하마."
"어... 엄마 정말이세요?"
"너 엄마 알잖아. 한번 아니다 싶으면 아니고 약속 꼭 지키는 거."
"알았어요."
최여사는 성준의 목소리만 듣고도 눈앞에 아들의 미소 짓는 얼굴이 그려졌다.
"당신이 웬일이래? 매일 딸 같은 며느리 타령하더니."
"아니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당신 요즘 말로 개념 있는 시어머니야. 허허..."
남편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제야 예전에 동서가 말하던 게 생각이 났다. 들었을 때는 동서가 푸념인 척 딸 부심 세우는 거라 생각하고 흘려들었었는데...
"...... 형님, 뭐 딸은 키우기 쉽나 어디? 밖에서 남으집 딸들이 엄마랑 같이 쇼핑하고 데이트하는 거. 화장품 사주고 그러는 것만 보고 부러워하는데. 아이구 우리 딸들 키운 거 생각하면 내가 아주 그냥 올매나 힘들었는지 사리가 대단히 나올 것이오. 이리 딸 엄마들이 희생한 건 눈감고 귀 닫고 좋은 것만 보는 게지요. 형님두 딸 같은 며느리 소리가 올매나 욕심이 과한지 알아야 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