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들, 친구(상)

by 강미아

"엄마, 저 왔어요."

나는 반색을 하며 막내아들을 맞았다.

"신환이도 왔구나. 오랜만에 잘 왔다. 여전히 곱상하게 자알 생깄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가득 지어졌다.


신환이는 아들과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30년 지기 동네 친구였다. 1980년대 중후반 경제 호황으로 취업이 잘되고 중산층이 늘어가던 시절, 남편은 조립식 헤드폰, 무선 마이크나 라디오 키트를 소매점으로 유통하여 수입이 좋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나는 남편의 월급을 관리하고 저축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곧 우리도 승용차를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세 아이들에게 몇 번씩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남편은 형편이 어려웠던 친구에게 빚보증을 섰고 재기를 꿈꾸던 친구는 더 어려워졌다. 연대보증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서울의 집을 잃고 경기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애들 공부를 생각해서 가까이에 큰 학교와 시가지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일어났던 일이다.


이전에 살던 서울의 학군지에서 항상 백점만 맞던 막내. 나의 은근한 자랑이었고 희망이었다. 막내의 국민학교 졸업식 사진 속, 빨간 눈과 부어있는 내 얼굴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그렇게 이사를 오고 몇 달이 지나자 두 딸들은 예전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했지만 막내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항상 혼자 다녔다. 나는 그런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남편이 미워지고 땅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기, 신환이는 아들의 첫 친구였다. 당시에도 신환이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피부가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학생이었다. 노래나 춤 등 잡기에 능하고 성격도 좋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동성 친구들도 많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신환이와 어울리며 소위 인싸가 되었다. 아들이 미소를 되찾자 나도 미소를 되찾았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신환이하고는 고등학교에서도 단짝이었다. 그저 내 아들이랑 잘 지내준 신환이가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는 각자의 생활로 서로 소원해진 모양이었지만 나는 가끔씩 신환이 소식을 묻는다.


"신환이는 잘 지내니?"

"잘 지내겠지. 뭐..."

"가끔씩 연락도 하고 그래라. 나이 들면 옛 친구가 그리운 법이다."

"궁금하면 엄마가 전화해 보세요."

"아이구 얘는... 친구 엄마가 전화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하긴... 나도 신환이 엄마한테 전화 오면 할 말이 없긴 하겠네."


그러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환이가 사회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5년 만에 처음 봤는데도 참 고맙고 대견했다. 신환이가 '어머니!' 하고 안기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얼싸안았다. 그게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그래도 아들이 가끔씩 중학교 동창들이랑 연락은 하는 모양이었다. 삼 년 전 아들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일요일에 집에 왔다. 중고등학교 친구들 집에 장례식이 있을 때면 끝나고 집에 들러 한 잠을 자고 가기도 했다. 그날은 많이 피곤했는지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들 얼굴이 여전히 상해있었다.

"누구네 (장례식) 갔다 왔는데?"

"신환이"

"누가 돌아가셨는데?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

장례식에서 무슨 일이 단단히 있었나 보다. 아들 표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삼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일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신환이 소식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부턴가 아들이 신환이를 데려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아들이 물었다.

"요기 노인정 잠깐 나가셨어."

"이 집에 엄마 혼자 두고? 하. 내가 안 왔으면 어쩔..."

"너 아들 머리는 엄마 머리 닮는 거 알지?나 똑똑한 아들의 똑똑한 엄마다?그런 엄마가 이제 겨우 칠십줄인데 백발 노인네 취급하면 못써."

"알았어요. 아버지 오시면 갈게요."

막내가 꼭 이렇게 유난이다.


나의 친정 쪽은 학자 집안이다. 나 또한 경기여고를 다녔고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허나 그 학자 집안에는 돈 버는 사람이 없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방 한 간을 내주어 하숙을 쳐서 근근이 살았다. 괜찮은 집안에서 선이 몇 번 들어왔으나 우리 집 형편을 알기에 전부 거절하였다. 숟가락 하나 가지고 부잣집에 시집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때 남편은 상경한 하숙생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인연이 맺어졌다. 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딸들과 아들의 학교 공부를 내가 시켰고 특히 아들은 나를 닮아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요새 이렇게 나를 파파 노인 취급을 한다.


신환이가 사 온 찰보리빵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환이 너 아직 결혼 안 했지? 너 얘처럼 아무나 만나면 안 된다."

"아, 엄마 나영이가 왜 아무 나야."

아들이 신환이를 의식하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걔 처음 볼 때부터 맘에 안 들었다. 여우처럼 생겨가지고 딱 너 울리게 생겼어! 손톱은 또 어찌나 요사스러운지..."

"사람 앞에 두고...그만 얘기해요. 지난번에도 했잖아요."

아차차, 그랬지.

나이가 들면 자꾸 같은 얘기를 하나보다.


생각해보니 며느리 본지가 꽤 오래 되었다. 아무래도 요새 우리 아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가보다. 지 주제에 별거라도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니 나영이가 괘씸해진다.

"결국에는 내 이럴 줄 알았다. 나영이 이 괘씸한 것! 아들아, 솔직히 말해봐. 너 지금 혼자 사니?"

"또 무슨 소리세요. 나영이랑 살잖아요."

"아이가 없으면 부부는 남는 것이 없어!"

"엄마, 그 얘기는 끝났......"

"신환아, 너 혹시 혼자 사니? 그러믄 당분간 우리 아들이랑 같이 지내면..."

"아, 엄마! 또!"


띠띡띡띡... 띠리링

남편이다.


"어? 아들네 왔네."

남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들의 표정이 차갑다.

"아버지, 다음부터는 엄마 혼자 두시지 마세요."

나는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자꾸 나를 꼬부랑 할머니 취급하네요."

남편은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그럼 저희는 갈게요."

아들과 신환이가 일어선다.

"신환아, 다음에 또 와야 된다."

나는 신환이의 두 손을 잡았다.

"어머니, 아프지 마시고요."

신환이가 다정하게 말한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우리 아들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나는 신환이를 꼭 안고 속삭였다.


아들과 신환이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보니 몇 달째 며느리에게 전화 한 통이 없다.

조나영. 광대뼈가 도드라진 게 첫인상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당시 아들은 대학병원 레지던트 3년 차였고 나영이는 교통사고 환자였다. 바깥사돈은 버스 운전, 안사돈은 대형 마트에서 청소용역 직원이었다. 학자 집안 출신인 나는 나영이가 아니었다면 말 한번 섞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나영이 또한 전문대(2년제)를 나오고도 변변한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어떤 의사 아들 엄마가 이 결혼을 두 손들어 환영하겠는가.

결혼식 내내 사돈네는 웃음꽃이 피었고 나는 눈물을 참았다. 결혼식 사진 속에 나의 웃는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진심이었으니까.

나는 두 딸이면 충분했지만 시어머니의 바램대로 대를 이을 아들을 낳고자 어렵게 임신했다. 예전에는 임신 중에 성별을 알 수가 없었는데 핏덩이를 낳고 고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탄성과 기쁨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품 안에서 아들이 젖을 빠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세 번째 아이임에도 모든 게 새로웠다. 남자아이라 하루 종일 저지레를 하는 아들의 뒤를 쫓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모든 게 행복했다. 나를 닮아 공부도 잘하고 엄마 말도 잘 들었던 우리 아들.


그 밝던 아들이 결혼하고는 변해버렸다. 집에 올 때마다 낯빛이 어둡더니 얼마 전부터는 신환이와 함께 집에 온다. 나영이한테 별거든 이혼이든 당하고 혼자 사는 모양새다. 얼마나 외로울까... 내가 우리 아들을 잘 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외로움을 많이 타 옆에 사람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신환이랑 얼마간이라도 같이 지내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 해야겠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약을 먹고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시간 있어요?"

"왜요."

"막내 집 좀 가보게."

"며칠 전에 애들 다녀 갔잖아. 왜 또."

"나 꼭 만나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이런 적 처음이잖아. 아무 말 말고 한 번만 같이 가줘요."


다행히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갔다. 남편을 설득해 아들에게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연락하면 분명히 힘들다고 올라오지 말라고 할 테니... 주말이어서 그런가 막히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택시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남편이 요금계산을 하는 동안 창문 너머로 아들네 아파트 공동현관문이 보였다. 그 앞엔 장바구니를 든 두 사람이 있다. 익숙한 얼굴... 아들과 신환이었다. 벌써 같이 지내고 있나... 그렇다면 다행이네. 남편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하려는 순간. 아들이 신환이의 허리를 감싼다. 신환이의 머리가 아들의 어깨로 기운다. 저게 무슨...? 나는 택시 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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