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들, 친구(하)

by 강미아

"막내야-"

"어... 엄마?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아들이랑 신환이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들... 너 대체 신환이랑......"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신환이가 아들에게 입을 열었다.

"오빠... 나 더 이상 이렇게는 못하겠어..."

오빠라니?

이게 무슨...

그리고 옆에 있는 나를 보았다.

"어머니, 이제 그만 예전처럼 돌아오세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어머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할께요...흐흑..."

그 애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흐느낀다.

눈물을 훔치던 하얀 손을 떼는 순간.

갑자기 신환이 얼굴이 내가 아는 젊은 여자의 얼굴로 바뀌어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아는.


"응? 나영이? 니가 왜 여기에......"

왜... 니가...

"여보, 이제 나영이 알아보는 거야?"

남편이 내 팔을 꾹 잡는다.

"엄마, 지금은 나영이가 기억이 나세요?"

아들이 내 어깨를 잡고 묻는다.

"신환이는 어디... 어디로 갔어?"

"...멀리 떠났잖아요."

"아."





삼 년 전, 아들이 갔던 장례식은 신환이가 주연이었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트럭에 치였다고 했었다... 그래 조금씩 다시 기억이 났다. 그 때부터 나는 이상해졌다. 바지가 온통 젖은 채로 반나절을 집에 있었던 기억. 남편이 내가 바지를 내리지 않고 볼일을 봐서 그렇다고 알려줬었다. 나는 기억이 안났지만... 언제는 마트에서 집에 오다 모르는 길에 있었던 적도 있었고... 그 다음엔. 아, 그 다음엔 딸들이랑 아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먹고 있지... 알츠하이머 약을...


현실에선 아직도 나영이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그날처럼...


아들부부가 결혼하고 두 해가 지났을 때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애를 마주하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입 주위 근육은 경련했고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으며 내 눈빛은 싸늘하게 식었다.

나영이는 나의 맘에 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계속 불어서 끝없이 커지는 풍선처럼 며느리와 내 사이는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그러던 어느날,

나영이의 풍선이 먼저 터졌다.


"어머니, 저 맘에 안 들죠."

나영이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나만 지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래, 너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까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싫은 사람이 떡을 주면 떡까지 싫은 법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아들이 나섰다.

"왜, 이런 엄마가 싫으니? 니가 싫어해도 난 니 엄마다. 너를 열달간 품다가 힘들게 낳았고 젖 맥이고 똥기저귀 빨고 12년 내내 도시락 싸준 니 엄마라고! 그런 내가! 저 기.집.애.가. 싫.다.고!"

속이 후련했다.

그 동안 아들이 실망할까 나는 입 밖으로는 내지 않고 참았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확인사살.

"엄마, 진짜 몰라요? 이러면 내가 불행하잖아. 엄마가 사랑하는 그 아들이... 그냥 내 친구 신환이 같이 대해주면 안 ? 나영이는 신환이보다 더 가까운 존재야. 신환이는 나랑 가끔 연락하는데도 엄만 지금도 신환이 좋아하잖아..."

아들이 울먹였다.

나영이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흐느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온전한 내 정신이 온힘을 다해 밀어낸다.

"그건 니 친구고! 너 힘들 때 신환이가 도와줬잖아. 엄만 걔한테 항상 그게 고마워."

"엄마, 나영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 땐 내 곁에 있잖아요. 평생... 그냥 제발... 나영이를 나같이 사랑해달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내 친구처럼 생각해줘요. 엄마, 나 예전처럼 엄마랑 잘 지내고 싶어... 제발 부탁이에요. 엄마... 제발요..."





아.

맞다. 그랬지. 그랬었다.


우리 아들은 한번도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누나들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엄마를 믿었고 사랑했다.

그런 아들의 부탁이었는데...

왜 난... 이제서야.

이렇게 기억을 잃고 망상에 사로잡혀서야 비로소 아들의 부탁대로 나영이를 아들 친구로 대한걸까.


"아하하...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거기에 눈물도 나왔다.

나는 내 정신을 끌어모아 말했다.

"아들, 미안해... 엄마가 다 미안해... 나영아, 나 지금 정신 말짱하다?... 그 동안 정말 미안했다... 너 노력한 거 다 안다. 다 알아. 니가 아니라 내가 다 잘못했다. 왜 그랬을까. 뭐가 그리 억울했을까. 우리 아들이 처음으로 그렇게 빌었는데...나영아. 이 시에미가 이제는 너를 우리 아들 친구로 생각하마. 이렇게 제 정신일 때도 말이야. 아들 친구에게 내가 뭘 바라겠니? 우리 아들이랑 잘 지내주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는 거 그거면 고마운거지. 지금같이 내 아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줘서 더 고맙고 말이야. 며늘아가. 앞으로도 우리 아들이랑 지금처럼 좋은 친구가 되어줘.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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