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비

我是他非

by 강미아

쿵쿵쿵쿵...

발 망치 소리에 은희는 또다시 손끝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다가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혹시나 과호흡이 올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처음부터 이러한 증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은희의 윗 집인 204호에는 대학생 아들 하나와 50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사람들은 발꿈치에 망치 하나씩을 달고 있었다. 밤낮 구별 없이 발망치로 두드리니 참다못한 은희의 남편이 경비실을 통해 연락을 했었고 그 결과로 자기네 아들은 대학생이라며 아무 문제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누가 대학생인 게 문제래? 안방, 거실, 주방까지 걷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쿵쿵쿵 들리는데 뭐? 대학생?"

"은희야. 진정해봐. 일단 우리가 처음 얘기한 거잖아. 며칠 기다려보자."

은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똑같을 껄."


204호는 며칠 조심하는 듯 느껴졌지만 이내 원래의 망치족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문쿵 소리와 가구 끄는 소리까지 업데이트되었다.


참고 참다가 한 번씩 경비실을 통해 얘기하면 그때마다 204호 아주머니는 자기네 윗집이 원인이다. 내가 발에 땀이 많아서 실내화를 못 신겠다. 우리 집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냐. 우리 집 사람들은 다 날씬하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갖다 붙였다.


첫 집을 장만한 한달 전이 지금까지 은희의 인생 중에 최고로 행복한 한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인생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신랑, 저 사람들은 왜 모르는 걸까? 그냥 슬리퍼 신고 발꿈치만 살짝 힘 빼고 걸으면 되는 건데... 뒤꿈치로 찍으면서 걷지 않으면 될 텐데... 몸무게가 문제가 아니라구..."

"우리도 고무망치 사 버릴까? 천장 좀 치게."

"에이, 똑같은 사람 되기 싫어..."

"부동산에 물어보니 위층도 자가라고 하더라고. 누군가가 이사 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겠지."

쿵쿵쿵쿵.

끼-익. 쾅. 끼이익

남편의 소음측정기에 63dB이 잠시 떴다.

은희는 몸이 움츠리고 떨기 시작했다. 남편은 TV를 켜고 은희를 안고 진정시킨 후에 인터폰을 들었다.

띠리리리-


"경비실입니다. 방금 아랫집에서..."

"아저씨! 거참 이상한 여자한테 걸려서 매번 힘드시것네! 지.금. 우리집에 저 혼.자.예.요! 제가 혼자서 뭘 그렇게 쿵쿵 거리겠어요!"

"뭐, 저도 일단 신고받았으니 말씀드리는 거예요. 슬리퍼 좀..."

"아니! 104호도 그렇지. 자기네가 나한테 뭐 보태준 거 있어? 내가 내 집에서 왜 신기 싫은 슬리퍼를 신어?! 그 여자가 정신병자야!"

"저기.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말 전했으니 조심 부탁드립니다."

삐--

경비는 귀가 아파 인터폰을 재빨리 끊었다.


104호와 204호.

같은 단지 경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두 집이다. 경비가 보기에는 이 두 집이 끝집이고 두 집은 서로 엘리베이터를 가운데 두고 있기 때문에 대각선 소음이 아니다. 304호는 사택으로 쓰고 있어 회사원 3명이 살고 있고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며 주말에는 비어있다. 무슨 얘기냐면 확실히 204호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허나 아파트 경비 입장에서는 어느 한 편을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운 쪽은 104호 은희였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어렵게 임신을 했고 이전 두 번의 유산으로 인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성화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혼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피해 상황을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엠프(스피커)를 화장실 환풍기에 대고 주변을 꼭 막아 소리가 새지 않게 한 뒤에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거나 신랑 말처럼 층간소음용 고무망치를 사서 윗집을 쿵쿵 두드리라고 했다. 하지만 은희는 그러기 싫었다. 비인간적인 위층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공구 가방 같은 걸 들고 아파트 경비와 함께 계단으로 올라갔다. 은희는 현관문을 반쯤 열고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보통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계단으로 2층에 가기 마련이다.

"204호가 아파트 시공사에서 하는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네요."

경비가 내려오며 설명했다.

"이벤트요?"

"1층이라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걸 못 보셨나 보네. 시공사에서 미래형 아파트라고 무슨 이벤트 했었어요. 우리 단지에서 한 집만 추첨해서 스마트홈 아파트 기능을 한 달간 체험하게 해 준다네요."

"아... 네..."

은희는 204호라고 듣는 순간 매트 시공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겪고도 204호를 모를까.

"별거 없다지만 오늘만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는 안 시끄러웠을까. 오늘은 안 그래도 친정에 가기로 했던 날이다.

하늘이 맑은 가을이었다. 은희는 집을 나와 운전을 하면서 비로소 해방된 느낌이었다. 뱃속 아이도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남편만 아니었으면 그 망할 새 집을 나와 친정집에서 계속 지냈을 것이다. 그만큼 그 집에 있는 게 이제 너무도 비참해졌다.



"신랑, 나 왔어~"

"늦게 왔네."

"일찍 와서 뭐해. 내가 내 집에 오는데 무슨 수용소에 끌려가는 기분이더라고. 하."

"그래서 말인데... 은희야. 나 오늘 이사 갈 집 알아봤어. 너만 허락한다면 최대한 빨리 가자."

은희의 입 주위가 실룩거린다.

"으으... 으윽 흑흑"

은희는 이 집을 처음 보았던 기억을 더듬었다. 동간격이 충분하고 정 남향이라 베란다로 햇살이 잘 들었던 1층. 앞은 화단이 넓어서 마치 정원에 온 것 같았다. 곧 생길 아이가 걸어 다녀도 1층이라 층간소음에 어느 정도 해방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15년 된 아파트라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필요한 부분마다 따로 견적을 내 알아보고 은희도 힘들지 않은 선에서 남편을 도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구석구석까지 두 사람의 정성이 깃든 아파트였다.

그렇게 둘은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했다.


다음날부터 함께 새로운 집을 알아보았다. 지금 같은 1층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바빴다. 그러기를 일주일.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은희야. 너 요새 윗집 얘기를 안 하네?"

"어? 생각해보니 그렇네"

언제부터일까?

친정집에서 다녀온 후로 윗집을 잊고 있었다.

"여행이라도 갔나?"

"긴 여행이어야 할텐데~ 한 달 살기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은희가 미소 지었다.

그 때였다.

집 밖이 소란스러웠다. 경비실 앞이었다.

"분.명.히 지금 저기 숨어있다니까!!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돼!"

시끄러운 목소리에 커튼을 열어보니 가로등 불빛에 비친 것은 204호 아주머니와 아파트 경비였다.

"아주머니, 여기서 3층 직접 보세요. 어디가 불이 들어와 있습니까?"

"어제도 하루 종일 얼마나 쿵쾅쿵쾅거리는지 천장이 무너지겠다고요!"

"진정하시고. 오늘은 들어가세요. 3층 사는 청년들 퇴근해서 들어오면 꼭 전달하겠습니다."

경비는 뭐라 소리지르는 204호 아주머니를 간신히 돌려보냈다.

은희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다음날 찬찬히 물어보려고 꾹 참고 자려고 누웠다.


"경비아저씨, 이것 좀 드세요. 귤이 달더라고요."

"허허... 매번 이런 걸... 잘 먹겠습니다."

"저어 근데 요새 204호에 무슨 일 있나요?"

"아, 그게...304호한테 난리예요. 저한테도 하루에 몇 번씩 인터폰을 얼마나 해대는지. 그럼 뭐하나요? 304호에 아무도 없는데..."

"자기네가 지금 층간소음으로 윗집에 항의하는 거예요?? 하. 어이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윗집을 막대기로 두드리고 우퍼를 사서 괴롭히지 않나. 그래 봤자 윗집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서 당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 청년들 와서 잠만 몇 시간 자고 출근하는 걸요."

'이제 귀신이 복수해주는구나.'

은희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자기가 직접 당해보니 어떨까?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나한테 와서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했겠지.'

"어찌나 난리인지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다니까요. 저런 집이 이벤트에 당첨돼서 스마트홈을 다 누리고 있으니 원 세상이 공평하지는 않네요. 뭐 그것도 얼마 안 남았지만요."

게다가 스마트홈 설명회에서 한 달간의 사용 후기를 들려주면 감사경품까지 받는다고 했다.

은희는 '악인이 너무 많다'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렸다.






아파트 앞의 주민센터 강당을 빌려 스마트홈 설명회가 이루어졌다. 경품 당첨 행사도 있어 많은 주민들이 모였다. 특히 204호 아주머니가 사회자 옆 특별석에 앉아 청중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저 아줌마 기어코 나올 줄 알았어. 그동안 그렇게 동네방네에 위층 욕하며 난리를 쳐놓고 주민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염치없이 나온 것봐."

"그 정도였어?"

"남편님, 진짜 바빴구나. 304호에 대한 층간소음 규탄 대자보까지 쓴 거 못 봤어? 기가 막혀서. 동마다 엘리베이터 옆에 다 붙였다가 경비 아저씨들이 다 뗐잖아. 떼면 또 붙이고... 304호가 바쁜 사람들이라 별말 안 한 거지... 나 같으면 경찰에 신고했을거야. 그런 허위사실은 명예훼손 소송감이야. "

"이야. 아주머니 스케일이 상당하시네."

"그래도 바빠지신 덕분에 그 뒤로 우리집엔 층간소음이 없어졌잖아."

은희가 또다시 살짝 미소지었다.


사회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 스마트 홈 컨트롤 서비스로 빌트인 제품들과 주요 생활, 가전 기업의 가전제품 제어가 가능하며 생활 서비스, 카(CAR) 투 홈 기능이 제공됩니다. 저희는 이번에 또한 이것을 설치했는데요."

사회자는 노란색의 작은 큐브 모양의 기기를 꺼냈다.

"스마트 큐브가 보이십니까? 이거야 말로 여러분이 꿈꾸던 아파트를 만들어 줄 마법의 상자입니다. 백억단위의 개발비가 들었으며......"

'꿈꾸던 아파트라고?흥'

은희는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직접 살아봐야 아는 거지. 스마트홈 기기 없이도 이웃만 잘 만나면 행복할 수 있답니다. 사회자님.'


사회자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스마트 큐브가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시죠? 놀라지 마시고 들으십시오. 이것은 바닥의 진동을 그대로 흡수하여 천장으로 전달하는 기기입니다. 바로 층간소음의 해결사지요."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쉽게 얘기하자면 204호의 가족들은 한 달 동안 자신들이 내는 층간소음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랫집이 들어야 했습니다만. 더불어 304호에도 이 기기를 설치해서 204호는 오직 자신들이 내는 소리만을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기능은 저만 알고 있었지요."

은희는 입이 떡 벌어졌다.

"자 여기 204호 아주머니가 나와 계시는데요. 직접 체험해보신 한 달간 어떠셨나요?"

"네에? 어... 어..."

"많은 분들 앞이라 떨리시나 봅니다."

맞다. 그녀는 마이크 잡은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솔직한 체험 후기를 듣기 위해서 일부러 신기능 설명을 안드렸거든요."

그녀의 얼굴이 얼룩덜룩 벌게졌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요? 이 기기가 층간소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 그게..."

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며 끊어진 정신줄을 찾고 있었다.

"그래!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집에...!"

그녀는 마이크를 쥔 상태로 후다닥 뛰어 나갔다.

그러다가 마이크 줄에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더니 달려라 하니처럼 출구를 향해 내뺐다.

단지 엄마 대신 가스불을 외치며.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서는 박수를 치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임신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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