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의 이름
아침, 점심을 먹고 난 설거지. 어제 남편과 말한 대로 이번에는 애벌설거지를 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릇과 접시에 음식물이 껴 있었다. 설거지남을 쓰려고 마음먹으니 전날과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나타났다. 지저분한 설거지 더미를 바라보는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겠지 했던 내 예상은 빗나가고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큭 역시 남편 말이 맞았어. 앞으로는 애벌설거지하지 말고 그냥 설거지남을 불러야지. 눈누난나~
약 1시간 후, 설거지남이 사라지자마자 얼른 가서 살균, 소독까지 된 그릇들을 살펴보았다. 헉 뭐야! 겉으로는 깨끗해 보였지만 딱딱한 밥풀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밥그릇, 군데군데 기름이 있는 접시. 화가 날 정도였다. 일부러 이렇게 한 건가? 뭐야! 정말!
한숨을 내쉬고 계속 생각을 했다. 환불? 아냐. 난 그 남자가 필요해. 아, 뭐지? 남편이랑 설거지 방법이 정말 다른데? 좋아. 저녁 설거지할 때 제대로 지켜보기로 결심을 하고 설거지를 모았다. 이번에는 물에 담가 두고 물 설거지를 해 두었다.
설거지남이 나타나자 나는 주방을 정리하며 그의 설거지를 지켜보았다. 처음부터 제대로 볼걸. 그런데... 손으로 하는 줄 알았던 설거지가 아니었다. 회색빛 작업복 앞에서 작은 물구멍이 몇 개 있는 샤워기 같은 것이 나오더니 주방 수도와 연결하고 전용세제를 넣어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 기계는 샤워기보다는 구멍이 크고 개수가 적어 물살이 셌다. 한 손으로 그릇을 움직이고 다른 손으로 기계를 대면서 주방세제를 묻혀가는 거였다. 손놀림은 굉장히 정확했고 횟수도 일정했다. 그리고 헹굴 때도 세제가 없는 그 기계를 사용하였다. 살균소독에는 다른 장비를 꺼내었다. 뜨겁고 푸른색 빛이 나서 자외선 살균이 되었다. 그릇들은 윤이 나고 뽀득거렸다.
그날 밤, 남편과 설거지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 생각은 어때? 그 남자 계속 쓸 것 같아?"
"생각보단 내 손이 가긴 하지만, 음. 설거지를 아무도 안 하니 뭐. 이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려고. 내 친구 선영이 알지? 걔는 설거지 몇 개 안될 때 계속 한대. 설거지남 왜 쓰는지 이해 못하더라고. 근데 선미 있잖아. 걔가 옛날에 추천한 적이 있었거든. 걔네는 아침부터 설거지 다 쌓아두고 하루에 한 번 쓴다더라. 너무 좋다고 설거지남 없었으면 이혼했을 거래. 킥킥."
"그래. 그리고 지금 와서 하는 얘기인데 솔직히 너 설거지 잘 못하잖아. 대충 헹구고. 설거지남이 너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구한거야. 크큭"
"뭐!? 그럼 앞으로 오빠가 해라!"
"그래도 내 덕분에 설거지가 줄었잖아."
"아휴~ 진짜아!"
그 뒤로는 몇 가지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전용세제가 다 떨어져서 설거지남이 왔다가 그냥 없어진 일. 설거지남 회사에 문제가 생겨 이틀 동안 설거지남을 보내주지 않아서 절망적이며 괴롭게 설거지를 한 일 등이 있었다. 물론 돈을 지불했지만 내가 싫어하는 설거지를 대신 해준다는 것이 특별한 고마움을 느꼈다.
난 아직도 완전하게 설거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세미를 가지고 그릇들을 물로 닦아 둔다. 설거지남이 완벽하게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세기씨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나는 돈을 지불했지만 사실 그 이상입니다. 내가 물 설거지를 해서 건네면 누군가 그릇들을 받아서 설거지를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게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함께 하고 싶습니다.
p.s. 전용세제 떨어지지 않게 할게요.
그의 성은 '식'이다.
<끝>
*그의 성은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