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준 남자(중)

#2. 설거지남의 한계

by 강미아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단조로웠다. 문을 열었더니 내 키와 비슷한 남자가 서 있었다. 외모는 깔끔했고 옅은 회색의 방수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와서 쌓인 설거지를 보여주었다.


"설거지를 지금 시작할까요?"

"네~"

"...?"

"저기. 설거지 안하세요?"


설거지남은 멀뚱히 가만히 있었다.


"설명을 못들으셨나봐요. 고객님이 먼저 물로 애벌설거지 해주셔야 제가 합니다."

"네에-?"

어이가 없다. 아마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설거지를 다 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정말 모르시고 계셨군요. 아닙니다. 물로 헹구어 닦아 주시고 가시면 그 뒤에 제가 세제로 닦고 뜨거운 물로 헹구고 소독까지 해서 말려드립니다."

"......!!"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따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환불을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오늘은 왔으니 그릇을 물로 헹구어 닦고 놓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원에서 오기 전에 집안을 청소하였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며 언뜻언뜻 엿보았다. 설거지남은 전용세제로 그릇을 닦고 뜨거운 물로 여러번 헹구더니 특수 장비로 그릇을 말리면서 자외선 살균 소독까지 해주었다.


'뭐, 꽤 쓸만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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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청소기를 돌리며 신발장을 보니 우리 가족 신발만 있었다. 주방쪽을 보니 어?! 그가 없다. 와. 이거 진짜였네. 설거지 할 때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거. 무섭다기 보다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그릇들을 보니 아직 따뜻했다. 왠지 설거지보다 살균소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저녁 설거지가 나왔다.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나면 그릇이 몇 개 없어서 그냥 내가 할까 하다가 요새 손목이 안좋아 저녁먹은 설거지까지 모아 쌓아두었다. 어차피 환불해도 오늘 비용은 지불해야 하니 설거지남을 부르기로 마음먹고 애벌설거지를 마쳤다. 인기척없이 설거지남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그릇을 가져갔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말이 없는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만화책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 주방에 왔다.


"엄마, 누구예요?"

"응, 설거지 해주시는 분이야."

"들어오는 소리 못 들었는데?"

"소리없이 오셔서 소리없이 가시니까 오늘만 인사하고 안해도 된다."

"안녕하세요? 우리 엄마 대신 설거지 해주시는 거죠?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는 설거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대요. 잘 부탁드립니다."


딸의 인사에 민망한 미소가 지어졌다. 설거지남은 애들은 한번 쓰윽 보더니 다시 설거지에 집중한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것도 같고 살짝 웃은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다.


퇴근하여 들어온 남편에게 애벌설거지 얘길하니 자기도 몰랐단다.

"그래서 그럼 환불할까?"

"아니아니~! 그래도 있는게 나아. 휴직했어도 힘들어.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삼시세끼 하느라 설거지가 얼마나 많은데. 애들 공부도 봐줘야 하고 빨래도 해야하고..."

"그럼 내일은 애벌설거지 하지 말고 불러봐. 설마 해주겠지."

"그러게. 내일은 그릇들을 물만 담가놓고 그냥 둬봐야지."

내일 설거지남을 시험해보겠다는 생각을 골똘이 하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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