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인간

by 강미아

"여자 친구의 이별통보에 아파트 16층까지 올라가 여자 친구의 집에 침입한 20대가 실형을 받았습니다. A씨는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올라가..."

그가 중얼거렸다.

'16층 외벽을? 타고난 도둑놈이구만.'

그는 맞은편 아파트의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외벽을 타고 가는 젊은이를 상상해보았다. 영화에 나오는 스파이더맨처럼... 아니다 아마 집집마다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뎠을 것이다.


이미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속이 무겁고 따끔거렸다. 많은 시간이 지날지라도 장발장처럼 그 죄를 숨기려면 그만큼 마음의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라면...

현실로 돌아오는 마법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 마트 가서 장 보고 올게. 당신 집에 있을 거지?"

그의 부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을 나가면서 뒤통수로 묻는다.

"ㅇ..."

쿵-!

"응."

그의 대답은 닫힌 현관문에 갇혔다.


얼마 전 퇴직을 하고 집에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아들방에서 어물쩡거리다 창밖으로 뒷동 아파트 베란다가 보였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는데 시력이 좋은 그는 마침 베란다쪽에서 어떤 여자가 무언가를 금고 같은 곳에 넣는 걸 보았다. 이창(히치콕의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남을 훔쳐보는 것은 범죄다. 시간을 확인하고 그는 가까스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금고 생각뿐이었다.

'맞아.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 같았어. 지금 시대에 금고라니... 게다가 우리 아파트는 다들 그렇게 잘 사는 편도 아닌데 말이야.'

그는 갑자기 심장에 메트로놈을 단 것 같았다. 알레그레토.

'뭐가 들었을까? 대체 뭐가.'


한 달 전, 그의 부인이 금붙이가 없어졌다며 난리 친 적이 있었다. 하나 있는 아들은 군 복무 중이고 그의 부인도 집으로 사람 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아 친구들이나 파출부 등 아무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분명히 도둑이 든 거야! 어째 금붙이만 싹 가져가냐고~!"

"여보, 요새 도둑이 어디 있어. 도둑이 도둑을 훔쳐간 세상이야."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도둑 편을 드는 것이여?!"

눈이 빨개진 부인이 그를 노려보며 찡그렸다.

"아니. 그게... 아. 요새는 CCTV다 블랙박스다 이런 것들 때문에 도둑질이 씨가 말랐다는 것이지."

그의 부인이 112에 당장 신고하겠다는 걸 말린 지 반나절도 안되어 화장실 변기 옆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아이고. 내가 소제한다고 담가놓고 깜빡했네. 다행이여. 진짜 다행이여."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인을 보며 금붙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건 그가 결혼할 때 해주었던 금사슬과 금구슬로 엮어진 순금 목걸이었다. 티브이에서 신라의 보물을 방영한 것을 보았는데 경주에서 출토된 목걸이와 똑같이 생겼다며 부인이 좋아했다.

그녀의 금사랑은 아무도 못 말렸다. 그녀는 오십이 넘도록 친한 친구도 없고 집 베란다에서 화초를 가꾸고 살림을 하는 게 다였다. 그녀가 행복할 때는 금 장신구들을 꺼내어 닦고 어루만지는 시간이었다.


"8시예요~"

휴대전화의 기계음성이 들렸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 시 정각마다 말하는데 그의 휴대전화의 기능 중에서 그가 꽤 맘에 들어하는 기능이다. 현대판 괘종시계라고.


'아, 8시! 어제... 8시 10분쯤이었지.'

그는 후다닥 아들방으로 갔다. 창문 너머로 뒷 동의 그 집을 살핀다.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아침이지만 그 집은 거실 불을 환하게 켜 놨기 때문에 남자아이 둘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어제 본 그 여자는 아마 아들 둘의 엄마겠지. 그때 그 여자가 베란다로 나와 무언가 금고에 넣는다.


"여보, 아니 아침부터 거기서 뭐해!? 후딱 와서 밥 먹어."

역시 그녀의 목소리는 현실감 충만.

"응. 아니야."

"뭐가?"

"아냐. 아무것두..."

마치 원격수업을 켜놓고 몰래 유튜브를 보다가 엄마한테 걸린 남학생이 급하게 인터넷 창을 닫듯 이 중년의 아저씨는 얼른 창문 커튼을 닫았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금고 생각뿐이었다.

'이상하지? 분명히 어제 아침에 무언가 넣었는데 오늘 비슷한 시각에 또 넣는다? 대체 뭘까?'

그는 부인을 쳐다보며 이 사람은 내 생각을 절대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망원경으로 그 집을 훔쳐본다면 고의성이 입증되어 처벌이 가능하지만 커튼이 날려 우연히 본다면 사실 처벌하기 어렵다. 즉 우연히 본다면 그는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우연히 보는 척을 했다.


며칠을 우. 연. 히. 본 결과, 매일 아침 그 집의 여자는 금고에 무언가를 넣어 두고 밤에는 그 여자의 남편인 듯한 사람이 금고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커튼을 쳤다. 낮에는 사춘기 정도의 남자아이 두 명만이 언뜻 보였다. 아마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들도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대학생이니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혹시 그 집 남편은 우리 마눌처럼 금붙이를 꺼내서 어루만지다가 자는 걸까?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그 여자가 다시 금고에 넣는 건가?'


그는 매일 그 집의 금고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금고 안을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일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알레그로.

'그 집은 6층이다. 스토커 스파이더맨은 16층까지 실외기를 타고 올라갔다... 6층? 나도 아파트 5층까지 실외기 없이 올라간 적이 있으니...'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장발장의 과거가 튀어나온다.


'딱 한 번이었어. 동식이... 그 새끼가 아...'


동식이와 어울릴 때마다 싫어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너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동식이와는 계속 어울렸다. 30년 전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 일이란 건 영화나 소설처럼 동식이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시킨 일이다. 그 거짓말이란 동식이네 전재산이 담긴 간이금고를 도둑이 훔쳐갔으니 그 도둑의 집에 가서 몰래 다시 훔쳐오자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어쨌든 그는 80년대 아파트 5층을 베란다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고 간이금고를 가지고 내려와 동식이에게 전해줬다.


왜 나였을까? 동식이는 다리를 삐었다는 등의 같잖은 변명을 했던 것 같다. 그는 다시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동식이는 그 금고를 가지고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는 금고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을 수도 없었고 동식이네 부모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수할까도 계속 고민했지만 그의 부모를 생각하며 미루다가 현재의 부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점점 더 죗값을 치르는 것과 멀어져만 갔다. 그는 그저그런 보통사람이었다. 딱 중간 정도의...


한 때는 그의 부인에게 털어놓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공소시효 때문에? 아니 절도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미 한참이 지났다.

그는 이제야 그 비밀을 털어놓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그가 훔친 금고 안에 무. 엇. 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는 자신이 훔쳤던 그 금고를 여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금고가 텅 비어있던 적도, 주인의 전재산을 바꾼 금괴가 들어있던 적도 있었다. 아니면 유언장 같은 종이가 있기도 했다. 만약 그 금고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나의 죄는 옅어질까? 반대로 그 금고 때문에 주인의 인생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한 번 꿈을 꾸고 나면 며칠은 심장이 주저앉은 듯했다. 잠도 오지 않고 입맛도 없었다.


그 집 베란다에 있는 금고 안을 궁금해하면 할수록 동식이가 가져가 버린 그것의 안도 궁금했다.


그의 부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입맛이 없는 그를 위해 삼계탕을 끓였다.

"당신이 일할 때 말이야. 스트레스받고 힘들어서 가끔씩 잠도 잘 못 자고 입맛도 없었잖아. "

"어떻게 알았어?"

"아유. 같이 사는 내가 그걸 모를까? 밖에서 일한다는 게 힘든거지."

그는 쌉싸름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아니. 그건 나의 과거 때문이었어. 역시 마눌... 당신은 나를 모르는군.'

"근데 그때는 돈 버느라 일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칩시다. 요새 또 왜 그런 거야? 집에만 있어서 그른가? 그러니까 나랑 산에도 가고 산책도 하면 얼매나 좋아."

'여보, 나는 정말로 금고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제발 아무것도 없었다면...! 아니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 게 있었기를...'

"아 맞다! 호호호 내가 아까 쓰레기 버리러 가는데, 요 앞에서 엄마들이 수다를 떨고 있더라고. 재밌어서 나도 좀 들었지. 글쎄. 요새 코로나로 애들 학교에 잘 안 가잖아. 집에서 수업을 받는데 애들이 자꾸 게임하고 딴짓하니 애 엄마가 컴퓨터에 원격 머시기 깔아놓고 감시를 하느라고 바쁘대. 그랬더니 이 녀석들이 이제 티브이로 유튜브까지 본다네?"

그는 삼계탕을 먹으며 그녀의 말에 관심 있다는 반응을 해준다.

"그래서?"

"아 그 애들 엄마가 글쎄 출근할 때마다 리모컨을 금고에 넣고 간다잖아 호호호."

"그리곤 밤에는 애들 아빠가 금고에서 리모컨을 꺼내서 티브이를 본대요. 그리고 또 아침에 넣고... 너무 웃기지 않수? 다른 엄마는 리모컨을 핸드백에 넣어 다닌다던데. 웃겨서 한참 듣다가 왔네."

"그... 금고에 리모컨을 넣는다고?"

"아 우리 뒷동에 6층 사는 아들 둘 엄마 있잖아. 얼굴 보니까 그 집이더라고."

"......"

"요새 엄마들 참 힘들겠어. 집에 있어두 힘들구. 출근하면 또 아유..."

"......"

"여보, 나...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비바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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