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Oct 24. 2021

무명작가의 유명한 일기

이름 없는 자의 푸념


이 이야기는 유명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해 가는 한 무명작가의 기록이다. 유명인이라 칭하였지만 정확히는 전문가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업계에서는 유명하지만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이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일기장에 나와 함께 협업했던 유명인, 혹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멋진 전문가들에 대한 관찰기를 적어볼까 한다. 그 와중에 감동하고, 부러워하며, 박탈감을 느끼다, 동기부여가 되어 열정을 불태우는 무명작가의 모습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 작가다. 부연하자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 석 자가 붙은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았음에도 당당히 드라마 작가라고 밝힐 수 있는 건 내가 돈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대본을 받아보기 위해 집필료를 지급하고, 나는 입금이 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상대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맞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집필료가 꾸준히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 훌륭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직업인의 신뢰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작품보다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좋은 작가인지 반문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YES!”다. 왜냐하면 입금을 받는 순간, 작가인 나에게도 상대의 잔고를 불려줄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제작사가 나에게 쓴 돈이 무용하지 않도록 열심히 글을 쓴다. 


드라마는 상업적인 콘텐츠인 한 편,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예술이다. 드라마는 특별히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이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두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촬영 현장의 스텝에게 돌아가는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 하나를 더 얹어주려 하는 연출자는 좋은 감독이다.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 촬영지를 체크해서 동선을 줄여주는 작가는 좋은 작가다. 무명작가를 데뷔시켜주는 제작사는 좋은 제작사고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해주는 배우는 좋은 배우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뜬금없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다. 그 시작은 한 달 전쯤, 함께 일하는 연출자가 던진 말이었다. 


“작가님 글 잘 쓰는 거 아니까 글 쓰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참했다. 이 말의 의미를 나는 안다. 본인의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완성품을 내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무명작가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없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허락을 구해야 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동의를 얻어야 하며, 어떤 인물을 세울지에 대해서도 설득을 해야 한다. 연출자, 제작사, 방송국, 그리고 배우까지, 작가는 이들 모두를 설득해야 작품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 대중의 공감대를 사야 하는 숙제는 그다음의 몫이 된다. 나는 돈이 되는 작품을 써 줄 의무가 있었고, 그걸 해내지 못하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낼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가 되어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를 설득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나는 초면의 감독님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보여주신 모든 작품이 다 다른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전부 달랐어요. 뭐랄까? 너희들이 써 달라 하니 써 주겠다, 그런 느낌?”


고백하건대, 이 날의 미팅은 모든 것이 좋았다. 연출자는 ‘팬데믹 시대의 위로가 되는 로맨스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는 담백한 의견을 꺼냈다. 투자가 들어와서도, 편성이 나서도, 배우가 붙어서도 아니고, 오직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새삼 부끄러웠다. 


10년간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 그걸 위해서는 카멜레온처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내 모습을 수없이 바꿔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 왔다. 하지만 너무 많이 변해버린 나는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빈 화면을 열었다. 진짜 나의 색깔을 찾기 위해서다. 어쩌면 처음부터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각자의 인생을 훌륭히 살아온 유명인들과의 인연이 습자지처럼 내 영혼 어딘가에 배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 10년의 시간 동안 내 일상과 맞물려 온 유명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무명작가의 마음을 흔든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의 가십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명망을 얻는 이들의 면면을 통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배워가자는 것이 이 책을 쓰기 시작한 목적이다. 그런 이유로 본문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의 사연은 실명이 아닌 별명을 부여해 풀어갈 예정이다. 여전히 고단한 무명작가의 넋두리는 부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