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중력을 거슬러 오른 돌덩이 (2)
곰 감독님은 열광하던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를 바꿔보라며 대본을 건넸다. 기사를 쓰는 동안 캐릭터 팔로우가 되었으니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셨을 터다. 물론 기사로 접한 나의 문장력도 어느 정도의 참고는 되었을 거였다. 이후 나는 숙제를 훌륭히 해냈고 이후 나는 곰 감독님과 한 작품을 같이 진행하게 됐다.
이쯤에서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다. 방송이 나갔는데 어째서 아직도 무명작가냐고 말이다. 나도 묻고 싶다. 그러니까 말이에요,라고.
당시의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고작 반년도 안 된 상태였다. 그러니 크레딧이 왜 중요한지, 계약은 어떻게 체결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팬심이 가득했던 나는 그저 참여하는 것이 기뻤고, 가능성을 인정받는 것이 좋았으며, 내가 쓴 대사가 배우의 입 밖으로 나와 TV를 통해 방송된다는 사실이 꿈을 꾸는 것 마냥 기뻤다. 그랬으니 됐다. 심지어 나는 곰 감독님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내가 좋다는데. 물론 나는 도인이 아니니 가끔은 곰 감독님께 당시의 일을 꺼내며 투덜댄다. “감독님 덕분에 제가 아직까지도 개고생 하는 거예요.”라고. 그러면 감독님은 이렇게 답한다. “미안합니다.”라고.
사실 난 이래서 곰 감독님을 좋아한다. 항상 감정에 너무 솔직하고 이를 피해 가는 법이 없다. 단언컨대,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어떤 유명인들도 곰 감독님만큼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물론 나와의 거리가 만들어낸 결과기는 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가장 가까운 별이 빛나 보이는 법 아닌가.
이후 난 곰 감독님과 단 한 차례도 작품을 같이 하지 못했다. 방송은커녕 단 한차례도 같은 프로젝트로 맞물려 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감독님의 면면을 더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대신 인간적 면모를 지켜볼 수 있었던, 작가로서는 불행하지만 인간으로는 행운을 맞게 된 나는 그분이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10년의 시간 동안 지켜봐 온 그분은 언제나 작품보다 가족이 먼저인 분이었다. 언제나 자녀들의 자랑을 했고, 아내의 근황을 전했으며, 그들 모두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본인이 작품을 만드는 이유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분은 항상 극단적으로 힘든 상황에도 인내했고, 참을 수 없는 모욕도 담담히 넘겼다. 그분이 바닥을 치던 어느 날, 무명작가를 찾아와 했던 말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미안한데 돈이 없어 그러니 오늘 밥은 작가님이 사시면 안 될까요?”
그날의 난 사실, 감독님의 그 말이 너무도 고마웠다. 말 많고 탈 많은 이 바닥에서 한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그분은 항상 그랬다. 힘들면 힘들다고 털어놓았고 그러다 본인이 힘을 갖추면 기분 좋게 베풀며 본인이 쌓아온 사람들과 경험을 고스란히 나누어주었다.
고작 한 번의 기억으로 낚시하는 것 같아 고백하자면, 내가 제대로 그분에게 밥을 산 건 오직 그날 하루였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감독님은 언제나 무명작가인 나에게 맛집을 발견했노라며 친히 운전해서 데리러 오셨고 맛있는 밥과 귀한 경험을 함께 해주셨다.
아직도 나는, 모든 연출자분들 중 나의 스타를 꼽으라면 곰 감독님을 꼽는다. 감히 연출자의 능력을 비교해서가 아니라 평범했던 시청자인 나를 열광시켰던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별을 달구는 원동력이 가족이라는 건,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드라마가 사람보다, 가족보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일 수는 없었다. 그분은 그걸 잘 해냈고 나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그래서 나는 아직 무명인가, 잠시 한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