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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Oct 24. 2021

무명작가의 유명한 일기

나를 믿는다는 것

드라마를 쓰기 시작하며 신기했던 건 포털사이트에 이름 석 자를 넣으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유명인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양 대표님도 그 들 중 하나였다. 여기서 오해는 금지다. 여기서의 ‘양’은 성씨가 아니라 동물에 빗댄 별명이니 말이다. 


양 대표님은 당시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를 제작한 뒤 한층 유명해졌다. 남다른 수완 덕분이었는지 여러 종류의 사업을 한꺼번에 하고 있었고 대단한 부자라는 소문을 몰고 다녔다. 훗날 그 분과 내가 함께 일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관계자들은 ‘백지 수표’로 유명한 분이라며 얼마나 씀씀이가 큰지에 대해 물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백지 수표’는 구경도 못해봤지만 양 대표님이 부유한 사람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몰고 다니는 차, 즐겨 입는 옷, 들고 다니는 소품, 오고 가는 장소, 그 분과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이건 고급스러움이 배어있었고 섬세한 성격 덕분에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극진히 대접하는 일에 익숙해 보였다. 고작 신인인 나의 생일에도 직접 공수해 온 수제 케이크를 선물했고 다음 해는 더 성대한 축하파티를 준비해주겠다며 정성을 다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응대였다. 


양 대표님은 무명작가에게 정식 집필 계약을 제안한 첫 제작사 대표였다. 무명작가가 그렇게 강조하는 ‘돈’을 지급한 첫 제작자였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아직도 일부 제작사는 작가들에게 제대로 된 집필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미 지급한 집필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회수해가기도 한다. 그러나 양 대표님은 적어도 자본에 한해서는 매우 정직한 분이었다. 일한 만큼 지불했고 일하지 않으면 돌려받기를 원했다. 


어쨌거나 무명작가는 첫 계약의 성과를 위해 열심히 글을 썼고 양 대표님은 흡족해했다. 나의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건 양 대표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해당 방송국은 신인 작가에게 대본을 맡길 수 없다며 경력 작가를 추천했던 것. 


나에게 상황을 알려야 했던 양 대표님은 약속을 잡아놓고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보낸 제작사 이사님이 상황을 설명하고 난 뒤 한참 후에야 조금 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양 대표님은 거침없는 행보에 비해 몹시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고 특히나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건 못하는 성품이었다. 


양 대표님은 미안해하며 다른 작품을 계약하자며 무명작가를 달랬다. 나는 바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른 작품을 잘 써보겠다고 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하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방송국은 신인 작가에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3초 정도 눈물을 보였다. 미안함에서였다. 이유가 무엇이건 대본으로 설득하지 못한 책임감에 무명작가는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담당 프로듀서가 집 근처까지 찾아왔다. 양 대표님이 방송국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시 무명작가에게 집필을 맡기겠다 했다는 것. 무명작가의 눈물에 마음에 흔들렸다는 후문이다. 대본에 대한 애정,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자책감, 거기에 3초의 눈물이 더해져 양 대표님은 타 방송국을 찾아보겠노라 선언했단다. 나는 곧바로 양 대표님에게 전화해 진심으로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다른 작품을 잘 써보겠으니 그 작품은 방송국에서 추천한 분께 맡기라는 뜻도 밝혔다. 


무려 9년 전의 이야기다. 약속대로 양 대표님은 나와 다른 작품을 계약했지만 그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무명작가는 제작사를 옮겼고 그분 역시 많은 일을 겪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꼬박 8년 뒤인 작년, 나를 좋은 작가로 기억하고 있던 그분은 다시 협업을 제안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여기에서의 결과는 감정적인 결과를 말한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했던 각자가 때가 묻은 채 재회한 뒤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대표님을 소환한 건 그저 그런 험담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표에 대한 그분의 고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나와 헤어진 뒤에도 양 대표님은 내가 두고 간 첫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고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절 동안 문제의 작품을 내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업의 기복과 상관없이 다른 데서 얻은 수익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했고 마음에 드는 대본이 나올 때까지 무수한 작가가 거쳐갔다고 한다. 방송국과도 쉼 없이 조율하고 맞춰가며 편성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드라마 제작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분의 고집과 신념을 존경한다.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해 나를 바꿔가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9년 전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무명작가를 갈아치우려 했지만 그 분만은 자신이 믿었던 작가를 끝까지 지지하고 희생을 감수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그분의 꿈이 꼭 펼쳐지기를, 그래서 소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보여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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