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의 컨닝페이퍼
기린 작가님이 재능 파라면 말 작가님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지독한 노력파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고난 재능 또한 남다르다. 그럼에도 굳이 말 작가님을 노력파로 분류하는 건 탄탄한 취재, 자료조사, 캐릭터 빌딩, 검수의 과정을 거쳐 쏟아내는 대본의 밀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말 작가님의 성공기를 꾸준히 지켜볼 수 있었다. 보조작가와 기획작가를 거쳐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드라마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이다.
무명작가는 가끔 속이 좁게도 누군가의 성공에 대해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로 폄하해 버릴 때가 있다. 부러움에서 뱉어내는 푸념이다. 그러나 감히 말 작가님의 행보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상상조차 품어본 적이 없다. 게으른 무명작가와 달리 말 작가님의 작품은 오랜 숙고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언젠가 특정 작품의 준비과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여행지로 택한 뒤 수년을 보내고, 해당 지역의 사투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사람을 사귀고, 인물의 전문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을 그 인물 자신으로 살았던 행보에 나는 자진해서 반성을 시작했다. 사실 무명작가는 아이디어와 글발로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다소 게으른 작가다. 흔히 작가 지망생들이 대본 필사로 드라마 공부를 시작하지만 나는 그 조차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치열한 취재가 좋은 대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낯가림을 핑계 삼아 책 뒤에 숨어 수많은 씬들을 해결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사람 사이에 있음을 말 작가님은 몸소 작품으로 보여주셨다.
나의 기억이 제대로라면 말 작가님과의 인연도 어느새 8년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처음 말 작가님을 뵈었을 때 나는 “오빠니까 커피 사주세요.”라며 나름의 넉살을 부렸지만 알고 보니 내가 누나라는 사실에 민망해했던 기억이다. 그때 말 작가님의 표정과 말투가 기억난다. 따뜻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던 그분은 흥행작가의 반열에 오른 지금도 그 성품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무명인 나의 생일에 해마다 작은 선물을 하고, 여전히 이름을 얻지 못한 작가의 근황과 안부를 먼저 챙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아마 말 작가님은 가장 완벽한 정답이 기재된 컨닝페이퍼일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작가가 여태껏 그 행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그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다는 장연한 진리. 그걸 몸소 실천하고 그 결과를 얻는 일은 진실로 위대한 일이라고 무명작가는 또 한 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