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거름은 외로움
용 감독님이 좋겠다. 지금부터 이야기를 풀고자 하는 분의 별명 말이다. 가상의 이름을 하나 씩 부여해야 하는 상황이니 글을 쓰면서도 각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분을 동물에 비유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와서 동물을 연상하며 별명을 짓기에는 이 분과의 인연이 너무 깊고 오래되었다.
용 감독님이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장담하건대 그분은 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후일에 설명드린 적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용 감독님은 무명작가에게 관심이 없다) 이분을 처음 만난 건 어떤 강연장에서였다. 드라마를 배워야겠노라 마음먹고 글을 쓰던 어느 날, 이 분의 일일 특강 소식이 전해졌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수강신청을 했다.
무명작가가 생각한 기회라는 건 이런 거였다. 내 글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 것.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주제에 자신감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 부럽지 않았던, 거의 시청자이자 이따금 작가이고 싶었던 나는 용감하게 4회 차의 대본을 들고 용 감독님의 특강 현장을 찾았다.
강의는 명강의였다. 그런 흡입력의 강의를 이전의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용 감독님은 달변이었다.
3시간을 훌쩍 넘긴 강의가 끝나고 나는 감독님께 대본을 전했다. 깨알같이 연락처를 적어둔 표지도 함께였다. 감독님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잘 읽어보겠노라 했다. 문제의 대본에 대한 후일담을 전하자면, 나는 해당 작품을 곰 감독님에게 보여드리고 혹평을 들었다.
‘미안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작가님. “
예의 바르지만 팩트 폭격을 가감 없이 날리시던 곰 감독님께 나는 이런 답을 돌려줬었다.
“그건 취향이 달라서예요 감독님.”
고백하는데 그때의 나, 정말 부끄럽다. 내 하드디스크에는 여전히 그때의 작품이 있고 10년 차 무명작가의 입장에서 평을 내리자면 ‘미안하지만’ 재미가 없다. 그런 이유로, 당연한 귀결이지만 용 감독님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뒤 용 감독님은 우연한 기회로 나의 다른 대본을 읽어보게 되었고 본인이 준비 중이던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며 연락을 주셨다.
나는 아직도 볕이 좋았던 스타벅스 2층에서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이전의 인연에도 불구하고 굳이 첫 만남이라 칭하는 건 강연자로서의 용 감독님과 연출자로서의 그분은 상당히 다른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강연자인 그분은 사교적이고 상냥했지만 내 앞에 앉은 연출자는 진지하고 날카로우며 외로워 보였다. 그 외로움의 정체는 빠져 있는 작품을 공유할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년 간의 시간 동안 용 감독님은 홀로 소설 속 인물들과 교감했고 생각을 키워갔다. 그런 끝에 부족하나마 작가를 마주하게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그때의 감독님은 몹시 들떠보였다. 그렇게 깊이 있고 밀도 있는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숨도 안 쉬며 쏟아놓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마치 오래오래 뇌 속에 고여 있던 생각의 바다가 툭 터져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인물의 서사, 그들의 가치관, 표현하고 싶은 지점, 떠오르는 배우 등,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미팅 전 날, 나는 원작을 읽느라 잠을 자지 못했고 결국 대화의 어느 즈음 의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음을 느꼈다. 결국 나는 “제 생각은 다음 미팅 때 말씀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꼬리를 빼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 감독님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