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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Oct 24. 2021

무명작가의 유명한 일기

별, 중력을 거슬러 오른 돌덩이 (1)

내 생애 가장 먼저 만난 유명인은 가수였다. 고교시절, 극성스럽지만 소심했던 팬이었던 나는 용감무쌍하게 가수의 연습실 앞까지 찾아가 직접 그린 그림을 투척하고 내빼려다 그를 만났다. 자정에 가까웠던 시간, 오로지 그와 그의 매니저, 그리고 나와 나의 친구만이 존재하던 그곳에서, 친구는 돌연 극성팬으로 돌변해 애정을 호소했고 나는 조용한 관찰자로 돌아가 당시의 감흥을 누렸다. 내 인생에 만난 수많은 유명인 중, 그 가수 하나만이 그저 별 하나의 존재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 외의 유명인들은 모두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인이었고, 한 집안의 가장이었으며, 나의 친구이자 동료였고,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스승이 되어주기도 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하루지기 대화의 상대로 머무르다 깊은 감흥만 남긴 채 그 인연을 다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분야에서 정점을 이룬 이들은, 뒤돌아서 가는 자리가 어디이건, 첫 만남에서, 그리고 이후로 오랫동안 별의 자태를 뽐내기 마련이다. 나에게 드라마 작가라는 인연의 길을 터 준 감독님 또한 그랬다. 


작가를 업으로 삼기 전의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았던 당시의 나에게 드라마는 지친 하루를 위한 보상이었는데, 이때 좋아하던 드라마의 대부분은 그분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을 열광시키는 사람은 대부분 연출자가 아닌 배우가 아닌가. 난 그 많은 드라마에 열광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 작품의 연출자가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 운명을 바꿔 놓을 그날의 아침까지도 그랬다. 


고백하건대, 날 때부터 지금까지 ‘빠순이’의 기질이 다분한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팬이었다. 그런 이유로 작가로의 전업 과정에서 방송 리뷰 기자 활동을 했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에 흠뻑 빠져있었고 그의 감정선에 몰입해 기사를 쏟아내고는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프레스들에게 그의 촬영 현장이 공개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염치 불고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의 홍보담당들이 내 기사를 꾸준히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별 볼일 없는 매체에 속해있던 나로서는 상당히 다행인 부분이었다. 


거기에 조금의 자랑을 더하자면, 내 기사는 이미 감독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었다. 홍보팀에서는 현장에 있던 나에게 감독님과의 독대가 가능한지를 물었고 당연히 나는 이에 응했다. 


돌이켜보면 호전적인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예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의 나는 내 글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내 글이 전문가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흥이 오른 나는 예정에도 없이 내 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드라마 작가가 꿈인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감독님은 답을 주었고 이후 나는 드라마 작가의 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나의 감독님을 ‘곰 감독님’이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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